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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력을 올립시다(1)

쭈-욱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그런 착각이 있었습니다. 엄청 복잡한 문제도 한 방에 해결하는 무적의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이 있지 않을까. 굴러보고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건 없구나. 기술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숫자와 그래프 뒤에 숨은 인간의 이야기, 사회의 맥락, 자연의 원리를 읽어내는 일이 더 중요했거든요. 물론 그걸 깨닫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275471-2021-10-05-09_14_35.jpg 중요한 건 늦게 알아채는 나쁜 버릇이 있다


결과를 해석할 때마다 가진 지식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인간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려면 심리학이 필요했고, 시장 트렌드를 예측하려면 관련된 분야의 역사를 알아야 했으며,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려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깊고 넓게 알고 있지 못하거든요. 그저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틀리고 수정해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업력은 쌓이니 가끔 그런 질문은 받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잘하고 싶은데 뭘 보면 도움이 됩니까. '분야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읽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책 3권을 골라봤습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 쟤한텐 도움이 되었겠구나' 정도로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논증의 탄생 - 조셉 윌리엄스

하나만 읽으라면 저는 이 책을 고를 것 같습니다. OS가 업데이트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생각하기-말하기-글쓰기가 같이 이어진다는 게 장점인데 읽고 나면 논증이라는 콘텐츠가 확실히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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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만큼이나 표지도 세련되게 바뀌었다


이 책은 단순한 주장이나 설득의 기술이 아닌,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으로 논증을 바라봅니다. 저자는 '명확하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명확한 사고가 형성된다'라고 주장하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쓰다 보면 가진 생각이 다듬어지고 진화하는 경험, 지금 이 포스팅을 읽는 분들도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도 분석 결과를 글로 정리하면서 오히려 분석의 맹점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제시하는 접근법이 분석 과정 전반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시한 '다섯 가지 질문'(핵심이 무엇인가? 왜 그 주장에 동의해야 하는가? 어떤 근거가 있는가? 어떤 원칙 때문에 그 이유가 주장을 뒷받침하는가? 반론은 무엇인가?)은 분석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하는 데 정말 유용한 프레임입니다. 저 프레임에 맞춰서 문답하다 보면 산출한 결과를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단점이라면 까다롭고 까다롭지만 까다롭다. 그 정도? 그래도 얻는 이득에 비하면 감수할만한 까다로움입니다. 본문 중에 문장을 하나 골라봤는데 쓰고 보니 논증과 데이터 분석은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논증이란 단순히 비판적 사고나 합리적인 설득의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전후한 생각하는 기술, 글을 통해 표현하는 기술을 복합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논리의 기술 - 바바라 민토

문제의 기술 편이었나요. 언젠가 한 번 소개드렸던 책입니다. 논리적 사고와 의사소통의 기술에 관해 다루고 있죠. 이 책을 꼽은 이유는 논리를 전개하는 순서, '피라미드 원칙'이라는 접근법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원칙이란 핵심 정의를 먼저 말한 후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거론하고, 그 요소들에게 맞춰 세부적인 내용을 거론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캡처.PNG 이 구조 하나만 건져도 책값은 뽑는다


텍스트로 쓰니 어려워 보이지만 의외로 우린 이 구조를 쉽게 접합니다. 보고서나 학위논문을 이 구조로 쓰거든요. 이론적 배경으로 정의를 내리고 관련된 문헌이나 연구자료로 구성요소를 정하고 측정하는 방식, 익숙하지 않습니까. '위에서 아래로-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로, 어려운 개념이라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결과 보고서를 작성할 때 피라미드 접근법은 썩 괜찮은 방식입니다. 핵심 메시지를 앞에 때려주고 그 뒤에 구성요소를 열거하여 각각의 분석 내용을 나눠서 붙이면 되거든요. 의사결정자들은 앞 단에서 빠르게 핵심을 파악하고 필요시 세부 내용을 찾아서 확인하면 됩니다(사실 세부내용까지 찾아보는 경우는 드물더군요).


연역법과 귀납법을 활용한 글쓰기 방법도 등장합니다. 전개 방향의 차이인데 전체적인 흐름(결론)을 먼저 설명하고 세부 데이터로 뒷받침하는 걸 연역적 방식, 여러 데이터를 나열하고 전체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걸 귀납적 방식이라 합니다. 경험상 보고서엔 연역적 방식, 결과브리핑엔 귀납적 방식이 좋더군요.

7f64e1a2e8cdd2dbf922c822742e8bf4_16903597596936.jpg 얘도 리커버 정말 예쁘게 나왔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문장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문장을 배열하는 순서, 즉 글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좋은 결과도 구성을 못하면 그저 그런 결과로 보일 수 있죠. 좋은 문장입니다.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 - 니시우치 히로무

쉬워서 꼽았습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통계학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쉽습니다. '통계학이 최강의 학문'이라고 주장하면서, 통계학을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 아닌, 실용적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말하는데 쉽습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통계적 사고가 중요하다 말합니다. 동감합니다. 쉬우니까요.

IMG_3653.jpg 통계학이 최강이긴 하다


쉽지만 가볍진 않습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분석의 결과가 실제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까지를 포함합니다. 분석의 실무적 가치를 생각하게 해 준달까요. 통상의 통계 관련 서적들과 다른 게 '인과관계'를 무척 강조합니다. 필드에서 '그럴 수 있다'로 정리되는 상관관계가 아니라 '~때문이다'로 귀결되는 인과관계로 정리되면 가치가 달라지거든요. 소위 각 잡고 분석에 임해야 합니다.


'빅데이터 뒤의 숨겨진 인과관계를 고도의 통계 분석기법으로 찾아내면 어떤 업종이나 업무에서든 이익을 더 높이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단 1원의 차이라도 통계적으로 유효하다는 분석을 해냈다면 이것이 나중에 수억, 수천억의 매출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떻게든 인과관계에 집중하고 찾아내라. 돈이 될지어다.

매력적인 얘기지 않습니까(솔깃).




세 권의 책이 다루는 주제는 기술적 능력 향상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논증의 탄생'은 분석 과정 자체를 되묻고 개선하는 접근법을, '논리의 기술'은 분석 결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의 중요성을,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통계의 힘'은 통계적 사고의 실용적 가치를 말하고 있지요.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더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더 가치 있게 접근하라는 얘기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문장들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주제로 몇 권을 더 꼽아보겠습니다.

다운로드.jfif 읽으면 분석력이 오른다. 읽으려면 사야한다.

편안한 명절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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