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초창기 고민 중 하나는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ing)였습니다. 직관적이며 유저에게 친숙한 그런 디자인을 곁들여 마지막에 결론을 딱 때려주는 그림이 그럴듯해 보였거든요. 때마침 시각화가 곧 경쟁력이라는 내용으로 많은 서적과 강의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시각화는 분석가의 필수소양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었던 거 같습니다. 그땐 나름 귀여웠었군요.
세월이 흘러 여유가 좀 생겼다고 시각화의 중요성을 낮게 보는 건 아닙니다. 시각화 역시 하나의 언어이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고급 스킬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는 걸 그땐 몰랐을 뿐이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습관은 어떻게 참신함을 이기는가'라는 아티클이 있습니다. 습관을 이기는 참신함이 쉽지 않다는 내용인데 읽다보니 이런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소비자들은 의외로 새로운 것이 주는 참신함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사물보다 익숙한 사물을 인식할 때 에너지와 정보를 덜 소모한다'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놀라울 정도로 오래간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다양하게 가공된 분석 보고서를 받아보는 데이터 수용자들의 시각도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걸 말이죠.
데이터 수용자들은 새로운 표현방식이 주는 참신함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정확히는 새로운 그래프나 현란한 배치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걸 불편해합니다. 에너지와 정보를 더 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막대-선-원형, 소위 그래프 3 대장으로 각인되는 데이터 전달방식은 참 효율적입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채널로 접해서 익숙하거든요. 익숙함은 해석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이고 데이터의 수용성을 높여줍니다. 변화시도가 나쁜 건 아니지만 기존에 설정되어 있던 익숙함을 너무 벗어나버리면 수용자는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효율과 안정감, 지금은 그 위력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행이죠?
데이터 분석가도 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초창기엔 시각화에 대한 고민을 했다면 요즘은 쓰기에 대한 생각이 많습니다. 기획서, 보고서, 제안서 등등 정말 다양하게 많이 쓰니까요. 프로젝트별로 살펴봐도 전반까진 숫자를 다루지만 후반 작업은 대부분 쓰기입니다. 쓸 때마다 '어떻게 하면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낼까'를 고민합니다. 일의 과정에서는 가진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일로 쓰는 문서엔 수려하고 맛깔난 문장이 요구되진 않습니다.사상이나 감정을 유기적으로 풀어내거나 세계관을 공유하는 문학작품과는 결이 다르죠. 대부분 정해진 포맷이 있고 답도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성하는 결과물 자체가 '복잡한 아이디어를 알아보기 쉽게 다듬고 배치해서 전달하는 과정'이다 보니 문서에도 나름의 작성법과 규칙은 가지고 있습니다. 신규 상품 기획안을 예시로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작성법과도 비교해 보시면 재미있을 거 같네요.
결론을 제일 먼저 씁니다. 읽는 사람을 고려한 배치입니다. 기획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록과 수치, 지식을 덧붙이는 문서거든요. 읽는 사람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궁금합니다. 나머진 거들뿐입니다. 구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한 두 문장으로 설명된다면 아이디어에 힘이 생깁니다. 아이디어에 힘이 붙었다면아래 예시처럼 공격적으로 진용을 꾸립니다.
예시 ) 경력직 팀워크 역량교육 신규 상품 기획안(실제론 '리텐션' 이렇게 뭉뚱그려 씁니다)
콘셉트 - '각자의 지식을 서로 기댐'으로 만들어내는 확실한 생산성
팀 차원의 의사결정기법, 활동 조정 스킬, 효율적인 정보교환 기법 등으로 생산성을 더하는 과정
필요성 -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의 약 70 %는 팀워크 부실이 원인(The Joint Mission.2005)
3-5명으로 구성된 팀은 복잡한 문제 해결 시 단일 전문가보다 우수한 성과(PNAS, 2021)
표본, 변수, 측정방식에 상관없이 팀워크 트레이닝은 팀 성과에 대체로 긍정적(McEwan, 2017)
기대효과 - 전문성을 '서로 기대는 과정'으로 조직 생산성의 유의미한 상승
장기적 관점에서 경력직 입사자들의 팀워크 역량 강화는 조직의 재무적 성과에 기여
시중의 팀워크 역량과정과 중복된 콘셉트 없어 론칭만으로 일정 부분 차별화 가능
지원사항 - 내주 화요일까지 영업, 디자인, 마케팅 부서 의견 개진 요청
새로운 아이디어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재정의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이렇게 재정의된 결과물을 설득시키는 게 모든 기획안의 목표죠. 설득력과 논리성을 함께 가져가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많은 생각이 바로 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구체화 단계에서 생깁니다. 그려내듯 하나의 문장에 담아야 하거든요.
논리의 피라미드에 맞춰본 재정의 구조
이와 관련해서 논리의 기술(바바라민토의 엄청난 책이죠. 읽어보시길 권합니다)에서 알려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논리적 글쓰기의 규칙 중 하나로 '어떤 계층에 있던 메시지든 하위 계층의 메시지를 요약해야 한다'라고 그랬거든요. 위의 예시에도 그 규칙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정의는 기존의 정의에 의미를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도출해 냅니다. 위 예시에서 '경력직 팀워크 역량'은 '각자는 나름의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는 명제를 덧대어 '각자의 지식을 서로 기대는 행위'로 재정의를 내렸습니다. 재정의를 구현하려면 논리적 정합성을 갖춰야 합니다. 하위요소들 역시 재정의의 색깔을 가져가야 한다는 의미죠. 전 지식이란 목적어에 기댐과 교환이라는 행위를 맞춰 교육모듈로 구현해봤습니다. 그 결과 '각자의 지식을 서로 기대는 행위'는 '팀 차원의 의사결정기법 + 활동 조정 스킬 + 효율적인 정보교환 기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구성된 하위요소들의 요소 및 특성을 요약했을 때 '서로의 지식을 기댄다'와 통하면 성공입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하위 요소에서 기존과 다른 포인트까지 들어간다면 설득력이 한층 배가될 겁니다. 그게 바로 차별화니까요.
분량도 가급적 1장을 넘지 않습니다. 많은 보고서나 기획서에서 습관처럼 첫머리에 등장하는 배경 및 시장분석 같은 부분은 과감히 날립니다. 표나 그래프,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없어도 재정의와 논리 전개만 깔끔하게 전개되면 내용 이해엔 무리가 없습니다. 억지로 넣었다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느니 일단은 빼고 작성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부 고객사나 내부 의사결정권자의 시간은 항상 부족하더군요. 배려해 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프 하나에 목숨 걸던 시절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보면 많이 어색해 할거 같군요(긁적)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하면서 항상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입니다. 동시에 의도나 분석 결과가 명확히 전달되는지 고민합니다.각매체가 가진 매력과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와도 맞닿는 지점입니다. 그래프나 인포그래픽 같은 시각매체는 강렬하지만 휘발성이 강합니다. 문장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만 강렬함은 시각매체에 미치지 못하죠. 다른 결과물을 접할때면 유심히 들여다보는 편입니다. 정해진 황금비율은 없으니 많이 봐두는 게 좋습니다.
개인적으론 문장에 조금 더 비중을 둡니다. 입체적 관점에서 유기적이고 탄탄하게 짜여진 문장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아무래도 시각매체에 매달렸던 시절이 좋은 양분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숫자와 논리로 쌓아 올려 눈앞에 그려지는 하나의 문장, 요즘 저에게 주어지는전달과 이해시킴은 그런 의미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