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에 기 빨려서 무슨 애를 낳습니까

의심병은 AI로, 저출산은 재택근무로 고쳐봅시다

명절에 고향을 가니 거리가 텅 비었더군요. 인구 소멸,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전편에선 AI가 우리 밥그릇을 뺏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작 AI가 우리를 대체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사라질 판입니다.


소멸의 위기 속에서, 지난달 스탠포드에서 발표된 연구 '재택근무와 출산율(Work from Home and Fertility)'은 아름다운 연구결과를 던져줍니다. 부부가 둘 다 주 1회 이상 재택근무를 할 때, 여성의 평생 기대 출산율이 0.32명 증가다고 했거든요. 지금 우리 출산율이 0.6명대, 넉넉히 쳐도 0.7명 언저리인데 여기에 0.32명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평생 기대 출산율이 무려 +0.32명이다


연구의 핵심은 재택근무로 세이브되는 하루 평균 90분의 통근 시간에 있습니다. OECD에서 출퇴근 시간이 가장 긴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아마 90분이 훌쩍 넘을 테고, 절약되는 에너지와 기댓값은 훨씬 더 클 겁니다. 1주일에 딱 하루 집에서 일한다고 최소 0.32명이 오른다니, 흐뭇하고 행복한 그림 입니다.




부영의 실험: 1억 원의 효과와 한계

물론 돈으로 해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아이 낳으면 1억 준다' 했었던 부영그룹죠. 제도 시행 2년 만에 부영의 사내 출생아 수는 23명에서 36명으로 60% 가까이 늘습니다. 보상 확실하니 효과도 실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부영처럼 시원하게 1억씩 쏠 순 없습니다. 돈 잘 버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도 쉽지 않은 결정이고, 전체 고용의 8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도, 보편화하기도 어렵습니다.

회장님, 그냥 건강하십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팬데믹 당시 전 세계가 재택근무를 경험했습니다. 위기가 끝나자마자 기업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임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죠. '혁신은 대면에서 나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기대했던 혁신은 눈에 띄지 않았고 출산율 역시 반등하지 못했습니다.


관리자들의 불신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앞에 사람이 보여야 안심하죠. 팬데믹 당시엔 반적인 준비가 부족했고, 성과가 아니라 시간으로 평가해 온 낡은 평가 시스템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불신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둔 작금의 우리에게, 이러한 본능적 불신은 필히 재고되어야 합니다.


적절한 도구는 마련하면 되고 평가는 고치면 되거든요.


어떻게 돌려보내면 좋을까

재택근무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생산성 저하에 대한 우려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기업들이 AI를 매우 공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AI 기반의 업무 협업 도구나 AI 에이전트들은 사용자의 모든 흔적을 투명하게 기록합니다. 경영진의 우려 자체가 '재택근무자의 성과 측정이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멍석은 이미 깔려 있는 셈입니다.

관리직의 우려와 달리 떨어지지 않은 생산성(MS)


사생활 침해나 감시 논란 역시, '회사에서 지급한 기기로는 업무만 수행한다'라고 못 박으면 논란의 명분이 약해집니다. 차라리 AI를 통해 반복되는 단순 업무는 자동화하고, 성과 가시화로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로 삼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훨씬 이득입니다.


물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재택이 불가능한 직군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겁니다. '돈으로 보상하겠지만 100% 균형은 어렵다'는 우회적인 스탠스가 불가피하겠죠. 부영 식의 현금성 지원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조치에 불만을 갖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무직의 재택근무로 출산율이 올라가면, 인구 증가나 내수 활성화, 연금 고갈 방지 같은 혜택은 모두가 누리게 되니까요. 다 같이 사이좋게 멸종하느니, 가능한 곳에서라도 아이가 태어나게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에게 주 2일 재택, 3일 출근을 보장했으면 합니다. 눈치 보며 사용하는 제도가 아니라, 안 쓰면 부서에 페널티를 주는 수준의 강제성을 띠도록 말이죠. 직원에게 돌려준 통근 시간 90분+@가 육아 시간으로 환원되어 보이지 않는 보조금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입니다.


아울러 고용의 8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는 AI 기반의 스마트워크 및 성과관리 솔루션 도입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직원을 믿지 못하겠다면, 믿을 만한 데이터를 들이미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니까요.




출근하다 기 빨려서 애를 못 낳습니다

재택근무도 하고 현금 지원도 주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둘 다 주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면 재택근무가 먼저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현금 지원은 극히 일부 기업에서만 시행 가능하지만, 재택근무는 전체 고용의 8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도 시도해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출근이 이렇게 힘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를 너무 어렵게 꼬으고 꼬아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수십 년간 수백조 원을 붓고도 안 됐던 건, 진짜 중요한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구요.


스탠포드의 데이터와 부영의 실험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집에서 일하게 해 주든가, 그게 힘들다면 충분한 돈을 줘라. AI라는 강력한 도구까지 쥐어진 마당에, 뭐가 겁나겠습니까.


진지하게 재택근무 다시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모두를 위해서 말입니다.







[참고자료]

Work from Home and Fertility

'아이 낳으면 1억씩'…이중근 부영 회장, 올해도 36억 지급(YouTube)

매출 50대 기업 재택근무 현황 조사(한국경총)

2022 마이크로소프트 업무동향 지표

Helping our developers stay productive while working remotely

어느날 디스크가 덮쳤다…출근길 1시간 길어지자 벌어진 일[출퇴근지옥④]


작가의 이전글브랜드 역전 현상과 아웃라이어의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