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로 뭘 했냐 그만 물어보세요

AI 시대, 인재는 어떻게 뽑는가

'이번엔 누굴 뽑지?'라는 질문은 언제 들어도 괴롭습니다. 특히 기술 수용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강고한 위계와 단기적 효율을 좇는 우리 조직 문화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답은 찾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저 역시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죠. 조직 입장에서는 '이 불확실한 존재를 어떻게 우리의 목적에 맞게 선별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교한 인적성 검사나 구조화된 면접을 도입해 선발의 타당도를 높인다 한들 이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조직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문화적 맥락이나 가치, 경험 등에 따라 달라지요. 우리가 주어진 목표를 향해 오차 없이 달려갈 성실성, 조직에 순응하는 태도, 검증된 스펙과 논리력을 우선한다면 실리콘밸리에서는 비판적 사고나 도전 정신을 더 높게 쳐주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우열보단 조직과의 매칭 정도를 보는 게 적절합니다.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다(긁적)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AI 시대, 우리의 인재 선발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요.




정말 이대로 뽑아도 괜찮을까

최근 HRD 업계의 교육 상품 리스트를 보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 리터러시, 애자일(Agile) 학습 능력,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같은 키워드가 공통으로 등장합니다. 예전엔 특정 직무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선호했다면, 요즘은 AI를 활용해 다양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듯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에 대한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겠죠.


달리 말하면, 'AI를 비서 삼아 남들보다 빠르게 일할 수 있는, 기술 친화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갖춘 논리적 인재를 향한 니즈가 커졌다' 정도로 정리됩니다. 선발 기준 역시 이와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정말 이대로 뽑아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유니콘에 가까운 인재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AI의 진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AI 활용 능력 자체가 범용화 되는 추세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AI 리터러시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길겠습니까.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검색 능력만으로도 우대받았지만, 지금은 검색을 특별한 기술이라 부르지 않거든요.

검색만 잘해도 우대받던 시절이 있었다


빨리 배우고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개념은 '누가 더 빨리 많은 결과물을 내는가'를 겨루는 기존의 효율 우선주의와 궤를 같이합니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효율성을 초월했으며, 이젠 모두가 그 효율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나 할거 없이 빨리 일하는 시장에서 '빠르게 일한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여전히 수직적이고 딱딱한 우리 조직문화는 기술 친화적이고 유연한 사고마저 가로막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AI가 인간 사회에 던진 화두는 '더 이상 인간은 효율성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오차 없는 실행과 효율적인 결과물 도출을 AI가 훨씬 더 잘, 그리고 압도적으로 싸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AI가 기본으로 깔려 있는 조건에서 차원이 다른, 범접할 수 없는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요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막연히 "AI를 잘 다루는 사람을 뽑자", "관련 자격증을 우대하자" 같은 의견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고민의 답을 취향(Taste)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은 기념일에 어떤 와인을 마시느냐,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 같은 개인의 기호가 아닙니다. 시장과 소비자가 기대하는 수준, 아니 그 기대를 뛰어넘어 "이건 정말 미쳤다"라는 평가를 이끌어내는, 압도적 완성도에 대한 감각적 기준을 의미합니다.

높은 기준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


한국의 소비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와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면 웬만해선 안 됩니다. AI의 도움으로 서비스와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율적으로 무난히 작동하는 수준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우아하고 고급지면서 깔끔한 인상을 남겨야 합니다.


제가 속한 HRD 업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AI의 속도와 생성능력을 빌린 콘텐츠나 AX 서비스의 수는 많아졌지만 깊이나 시야에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섬세한 사용자 경험 설계, 콘텐츠의 유기적 연결성 확보, 미묘한 뉘앙스 조율 등의 세심함에서도 약하죠. 빈약한 취향에서 발생한 부작용입니다.


AI가 그려낸 수많은 시안 중에서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건드리는 진짜를 골라내고 그것을 극한의 완성도로 끌어올리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취향이고 우리가 찾아야 하는 인재의 절대 기준입니다.


취향이 실력을 이끌고 세상을 이끕니다

실력과 취향은 맞닿아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취향이 머릿속에 뚜렷한 상으로 맺혀 있을 때, 그것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끌어내는 능력이 실력이거든요. 흔히 실력이 먼저고 취향은 나중이라고 생각하는데 관련 연구나 사례에서 실제 성장, 특히 창조적 영역에서의 성장 패턴을 살펴보면 그 반대입니다. 취향이 실력을 이끕니다.


뚜렷하고 높은 수준의 취향(기준)이 있는 사람은, 부족한 실력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결과물을 견디지 못합니다. 화가 나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죠. 하지만 앞서 있는 취향은 끝내 실력을 끌어올려 그 간극을 메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실력이 취향과 균형을 맞추는 순간, 취향은 다시 저만치 앞서 나갑니다. AI가 간극을 메우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겠지만 성장 루프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취향과 실력의 성장 루프는 HRD 업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HRD를 관통하는 기조가 바로 가성비거든요. 높은 취향은 방대한 문화적 경험, 수많은 좋은 것들을 보고 겪으며 쌓아 올린 안목, 그리고 자신의 결과물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과 극복이 오랜 시간 어우러져서 만들어집니다. 생성 비용이 압도적으로 높은 자산이라 짧은 시간에 후다닥 해치우는 우리의 기업 교육 기조와는 결이 맞지 않습니다.


조직 내부에서 가르쳐서 만들 수 없다면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사 와야 합니다. 이는 인재 선발의 패러다임이 성실한 이를 뽑아 효율을 가르치는 것에서, 이미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에 대한 집착을 가진 이를 모셔 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소 비싸더라도 쩔 수 없습니다. 이건 사야죠.




하이엔드에 대한 집착을 파악하라

어떻게 취향을 감별해 낼 수 있을까요. 아마 제가 면접에 들어간다면 이렇게 물어볼 듯합니다.


"최근 1~2년 사이,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취향)에 미치지 못해 좌절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기준과 결과물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셨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스스로의 결과물에 웬만하면 만족하는 사람, 즉 취향이 낮거나 없는 사람에겐 상당히 곤혹스러운 질문입니다. 주어진 목표달성엔 익숙하겠지만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에 닿지 못해 고통받아본 경험은 없을 거거든요.


반면, 자신이 지향하는 우아하고 고급진 기준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질문이 반가울 겁니다. 내가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들었는지, 어떤 디테일을 수정해서 성과를 냈는지, 그리고 앞으로 AI를 활용해 이 간극을 좁혀나갈 것인지 아주 신나게 얘기할 겁니다.


ChatGPT로 뭘 만들어봤는지 그만 묻자


지원자의 기준이 하이엔드인지, 그 하이엔드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게 인간이 AI 시대를 버티는 힘이고 나아가 조직을 이끌 열쇠거든요.


그러니까 ChatGPT로 뭘 만들어봤는지.

이제 그만 물어봅시다.




[참고자료]

https://blog.kinglycrow.com/no-skill-no-taste

개인의 취향과 디자인 결과물 사이의 상관관계 연구

한국기업의 조직문화: 조직문화적 역량 관점과 공유가치, DNA구조 관점에서의 한국 대기업의 성장동력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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