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맨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
어제 충주맨의 사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놀라진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점의 문제라고 봤거든요. 많은 분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던 전임 시장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시점에 '영리하게 던졌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자신의 사직이 전임시장 사퇴 이전이었으면 비난이 본인 몫이 되지만 그 이후가 되면 조직의 몫이 되니까요.
기왕 화제가 된 김에 조금 건조하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왜 조직의 아웃라이어는 떠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우리 조직 사회가 이 현상을 통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조직보다 개인의 인지도가 커지는 사례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흔히 관찰됩니다. 경영학 교과서에선 핵심 인재는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면서 아래와 같은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핵심인재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팀을 꾸려주고, 결재 라인을 최소화하여 창의성을 극대화한다.
규정의 한계 내에서라도 최대치의 성과급을 지급하고, 특별 승진을 통해 보상한다.
핵심인재를 조직 혁신멘토로 지정하여, 내부에 노하우를 전파하게 하고 사내 강사로서의 권위를 부여한다.
듣기엔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이론과 솔루션들이 제대로 작동할까요? 글쎄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자신합니다.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질척하거든요.
질척한 현실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조직은 자신보다 유명한 구성원을 견딜 수 있는가
: 일단 충주맨이라는 개인 브랜드가 충주시라는 브랜드를 압도합니다. 우리는 충주시가 무슨 행정을 하는지는 몰라도 충주맨이 무슨 영상을 올렸는지는 아니까요.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우선 새로 부임할 리더 입장에선 실익이 없습니다. 충주맨이 계속 잘하면 충주맨 덕이지만 충주맨이 부진하거나 실수라도 하면, 그 관리 책임은 조직의 몫이 됩니다.
당장이야 100만에 육박하는 구독자들 눈치에 추켜주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지원을 축소하거나, 힘을 빼는 수순으로 갔을 공산이 큽니다. 어디까지나 전임 리더의 사람이니까요.
인간은 배고픔보다 배 아픔을 버티지 못한다
: 공직사회처럼 위계가 명확하고 보상이 획일적인 조직에서 튀는 놈은 공공의 적입니다. 사실 위계 문제는 한국사회가 거진 비슷하군요.
충주맨은 6급입니다. 9급에서 십수 년이 걸릴 길을 단숨에 뛰어넘었죠.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과연 주변에서도 그리 생각할까요. 쉽지 않습니다. '유튜브 몇 개 찍고 승진하네? 나는 민원인한테 욕먹어가며 개고생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향사회 비교에 따른 박탈감이라고 합니다. 박탈감으로 생성된 조직 내의 미묘한 시기와 질투는 정량화되지 않는 감정 비용을 야기합니다.
주변에서 한 숟갈씩 거드는 비아냥은 싸우기도 애매합니다. 싸워서 이겨봤자 평판만 나빠지죠.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한들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됩니다.
공무원이라는 꼬리표는 족쇄인가, 날개인가
: 충주맨 콘텐츠의 성공 요인은 '가장 보수적이고 딱딱할 것 같은 공무원이, 자유롭고 파격적인 B급 밈을 구사한다'는 의외성이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제약이 아니라, 그의 광기를 돋보이게 하는 좋은 장치였죠.
의외성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후발주자들이 나오니까요. 여기에서 개인 차원의 메타인지가 중요해집니다. 공무원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린 충주맨 김선태는 크리에이터로 경쟁력이 있는가. 콘텐츠 구상부터 주연, 편집까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서 올라간 사람이라면 해볼만한 도전이죠.
저 역시 그가 어떤 신선함을 들고 나올지 흥미롭습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이별
서두에 말씀드린 HR 이론들은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귀결될 가능성이 크죠.
독립 부서 -> 특혜 논란으로 내부 감사
파격 보상 -> 불가능. 기껏해야 표창장 하나 더
신임 리더가 품는다 -> 정치 공학상 희박
혁신 아이콘으로 대우 -> 더 극심해질 견제
역설적이지만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은 이별입니다. 자기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공직사회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가 없음
리더 교체로 인한 불확실성 회피
외부 시장에서 나의 몸값이 정점일 때 매도
세 가지가 맞닿습니다. 안 나갈 이유가 없죠.
압도적으로 잘하면 압도적 보상이 당연하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성과에 따른 보상입니다. 압도적으로 잘하면 압도적인 보상이 가야죠. 그래야 조직의 힘이 생깁니다.
충주맨이 떠난 충TV는 예전 같지 않을 겁니다. 보는 이들은 아쉽겠지만 조직은 이전의 예측 가능하고 평안한 조직으로 돌아가겠죠. 내심 평안함을 반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한 편으로 씁쓸합니다. 우리의 조직문화로는 천재를 키울 순 있어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으니까요. 언제쯤이면 우리 조직들도 이런 아웃라이어들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해질 수 있을까요.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