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츠-츠바이브뤽켄의 엘레오노라 카타리나
칼 10세 구스타프에게는 세명의 누이와 한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중 큰누나인 크리스티나 마그달레나는 바덴가문으로 시집갔고 첫째여동생인 마리아 유프로시네는 스웨덴의 장군이었던 마그누스 가브리엘 드 라 가르디와 결혼했습니다. 막내동생인 아돌프 요한은 브라헤 가문의 딸들과 결혼했었죠.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할 사람은 둘째여동생이었던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입니다.
팔츠-츠바이브뤽켄-크리부르크의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다른 형제 자매들처럼 스웨덴의 여왕인 크리스티나와 함께 자랐습니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어린시절 고모에 의해 양육되었는데, 고모가 죽은뒤에는 고모의 큰딸이었던 크리스티나 마그달레나가 돌봤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고종사촌들과도 친했는데 특히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크리스티나와 몇달 차이나지 않았고 같은 스승밑에서 공부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엘레오노라 카타리나가 크리스티나와 친했고 심지어 그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정할수 있습니다.
그때문에 엘레오노라 카타리나 역시 당대에 스캔들이 될 만한 사건을 남기게 됩니다
1643년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에게 혼담이 들어오게 됩니다. 상대는 헤센-카셀 가문의 분가로 에슈베게를 물려받았던 헤센-에슈베게의 프리드리히였죠. 그는 1641년부터 스웨덴 군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혼담은 바로 성사되지 않고 좀 오래 끌게 됩니다.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의 아버지인 요한 카시미르는 물론 섭정단까지도 둘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요한 카시미르는 악셀 옥센셰르나에게 조언을 구했고, 의회는 아버지가 원하는 나이가 될때까지 결혼을 미룬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하라고 조언했던듯합니다. 1643년 둘은 약혼을 했으며 3년이 지난후인 1646년 20살의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와 29살의 헤센-에슈베게의 란트그라프였던 프리드리히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후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결혼식이 몇달뒤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남편에게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비밀을 고백합니다. 결혼 몇주전 궁정의 플룻주자와 관계를 가졌고 그때문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었죠. 이 이야기를 들은 프리드리히는 아내를 용서했으며 스캔들을 막기 위해 이 이야기를 비밀로 붙이기로 합니다. 이 이야기는 두사람만 아는 이야기로 넘어갈수 있었지만,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에게 궁정 음악가가 편지를 보냈으며 이것을 엘레오노라 카타리나가 오빠인 칼 10세 구스타프에게 보냈기에 편지가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자신을 용서한 남편과 그리 오래 살지 못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군인으로 스웨덴의 폴란드 전쟁을 참전했었는데 그때 전사했기 때문이었죠.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남편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지 못했죠. 하지만 엘레오노라 카타리나는 남편이 죽은뒤 재혼하지 않았으며 홀로 살았고 스웨덴을 가끔 방문하긴했지만 스웨덴 궁정에 가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스캔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서 였을듯합니다.
엘레오노라 카타리나의 세딸중 둘째딸인 율리아네는 당대에 미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는 스웨덴 왕비감으로 여겨졌습니다만, 그녀 역시 어머니처럼 사고를 치게 되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