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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답받지 못한 사랑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 이야기

by 엘아라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의회에 권한을 주면서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녀의 남편인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였죠.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결혼할때 많은 구혼자들이 있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핵심 왕위계승자였기에 비록 이빨빠진 호랑이로 전락해가고 있는 스웨덴이었지만 그래도 "호랑이"였기에 스웨덴의 왕위는 매우 매력적인것이었죠.이런 상황은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남편을 선택할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헤센-카셀 프리드리히를 선택합니다. 그는 울리카 엘레오노라보다 여덟살 많았으며 이미 상처한 홀아비이기도 했었습니다. 조건이 어쨌든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프리드리히에게 반해버렸으며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사랑으로 결혼한것이었지만 프리드리히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스웨덴 왕위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그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800px-Georg_Engelhard_Schr%C3%B6der_-_Ulrika_Eleonora_Queen_of_Sweden.jpg 울리카 엘레오노라


이런 상황은 후에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상황을 슬프게 만들게 되죠.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여왕으로 즉위한뒤 사랑하는 남편이 국왕으로 즉위하길 바랍니다.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처럼 공동 국왕이 되길 바랬었죠. 사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기에 그가 국왕으로 즉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웨덴 의회는 이를 허락하지 않죠. 결국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을 위해 자신이 퇴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는 "여왕"이 아니라 국왕의 아내로 남길 원했죠. 결국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즉위한 2년후인 1720년 남편을 위해 퇴위하고, 그녀의 남편인 프리드리히가 스웨덴의 국왕 "프레드릭"으로 즉위하게 되죠.


이렇게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습니다만 그녀의 남편은 그냥 당대의 평범한 왕족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덕에 국왕이 되었음에도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정부를 둡니다. 특히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공식 정부를 둔 국왕이 되죠.


Fredrik_I%2C_king_of_Sweden.jpg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 스웨덴의 프레드릭 국왕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을 위해 이 상황을 견뎠으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편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국왕의 정부를 받아들이는 듯한 체스쳐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 친구에게는 국왕의 행동에 매우 충격받았다는 것을 밝혔었죠.


이후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프레드릭 사이는 매우 벌어지게 됩니다. 스웨덴 대중들은 자비심 많고 남편에게 헌신적이었던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편을 들었으며 스웨덴 교회는 죄악인 "정부"를 공식적으로 들인것에 대해 국왕을 비난하죠. 곧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남편의 부정을 참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몰아내고 국왕은 자신의 영지인 헤센으로 떠날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했었다고 합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741년 울리카 엘레오노라 왕비는 천연두로 사망합니다. 그녀가 아프기 시작하자 중독된것이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만 그녀의 병세가 대중에게 공개 되면서 그 이야기는 잠잠해졌죠.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남편인 프레드릭은 아내가 죽은뒤 재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계속 정부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Hedwig_Taube_von_Hessenstein_c_1740_by_Lorens_Pasch_the_Elder.jpg 헤드빅 타우베, 헤센슈타인 백작부인, 프레드릭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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