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과 헤센 가문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은 팔츠 가문의 분가로 비텔스바흐 가문의 일원이다. 비텔스바흐 가문중 팔츠 분가들은 장자상속제를 오래도록 하지 않아서 수많은 분가들이 있었으며, 스웨덴의 왕위를 얻게 되는 칼 10세 구스타프 역시 팔츠 가문의 분가였던 팔츠-츠바이브뤽켄-크리부르크 가문 출신이었다.
크리스티나 여왕이 퇴위하기전 그녀는 자신의 고종사촌(이자 아마도 유력한 남편후보)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칼 구스타프를 왕위계승자로 지목했으며 의회의 승인을 얻어냈다. 칼 구스타프의 어머니는 칼 9세와 첫번째 부인인 팔츠-지메른의 마리아의 딸인 카타리나였다. 그녀는 이복동생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믿고 의지했었던 누나였는데 크리스티나 여왕이 태어났을때 아이를 안고 가서 국왕에게 아이의 성별을 확인 시켜줄 만큼 신뢰가 깊었었다.
칼 10세 구스타프 역시 외삼촌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처럼 전쟁에서 직접 선두에서 지휘하는 인물이었다
칼 10세 구스타프 (1622-1660)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헤드빅 엘레오노라 (1636-1715) 결혼 : 1654년
: 헤드빅 엘레오노라와 칼 10세 구스타프는 정략결혼으로 스웨덴과 홀슈타인-고토로프는 공통의 적인 덴마크를 견제하기 위해서 동맹이 필요했고 결국 공작의 딸과 스웨덴의 국왕이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결혼을 제안한 사람은 바로 크리스티나 여왕이었다고 합니다.
1. 칼 : 후에 스웨덴의 칼 11세
칼 10세 구스타프는 37살의 나이로 병사했고 그의 후계자였던 칼 11세는 겨우 다섯살이었다. 이때문에 그의 어머니였던 헤드빅 엘레오노라가 섭정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칼 11세는 늘 어머니의 영향력아래 있었으며 그가 친정을 한 뒤에 도 국사를 어머니와 의논했었다.
칼 11세 (1655-1687)
-덴마크의 울리카 엘레오노라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정치적 이유로 칼 11세와 약혼했는데 칼 11세의 어머니인 헤드빅 엘레오노라는 덴마크 공주를 며느리로 들이는것을 싫어했었습니다. 오랜 전쟁등으로 인해서 거의 파혼할뻔하는등 결혼하기 힘들뻔했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기다렸으며 결국 스웨덴으로 갑니다. 스웨덴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는데 궁정에서는 늘 시어머니의 그늘에 가렸으며, 군대를 이끌고 나가있는 남편때문에 늘 홀로 지내야했었으며 이때문에 주로 자선사업등에 모든 정열을 쏟았고, 많은 이들이 이런 왕비를 좋아했었습니다. 칼 11세는 아내의 생전에는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죽을때 어머니에게 아내가 죽은뒤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었다고 합니다.
1.헤드빅 소피아(1681-1708) -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프리드리히 4세, 1698년 결혼
헤드비그 소피아의 손자인 페타르는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외손자로 이모인 옐리자베타 여제에 의해서 러시아 황위계승자가 되었고, 황제 표트르 3세가 됩니다. 이후 러시아 황제들은 그의 후손입니다.
2.칼 : 후에 스웨덴의 칼 12세
3.구스타프(1683-1685)
4.울릭(1684-1685)
5.프레드릭(1685)
6.칼 구스타프(1686-1687)
7.울리카 엘레오노라 : 후에 스웨덴의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
칼 12세는 칼 11세의 아들로 매우 강렬한 인물이었다. 15살에 권력을 장악한 그는 평생 군인으로써의 삶을 선택했다. 그는 미혼으로 지냈으며 군대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치세가 스웨덴이 마지막으로 큰 군사작전을 펴던 시기였다. 하지만 러시아 원정의 실패는 칼 12세와 스웨덴에 치명적이 된다. 그가 죽은후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다.
칼 12세 (1682-1718)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오빠인 칼 12세가 사망한뒤 왕위계승을 주장한다. 하지만 의회는 이를 이용해서 국왕의 왕권보다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이후 스웨덴은 유럽 다른 국가들이 절대 왕정시기에도 귀족중심의 정치가 진행되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 (1688-1741)
- 헤센-카셀의 란트그라프 프리드리히, 1715년 결혼
<<헤센 가문>>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인 프리드리히와 공동국왕으로 즉위하고 싶어했으나 의회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1720년 남편인 프리드리히에게 국왕 지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여왕이 아닌 왕비가 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어서 이후 왕위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아내인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서 왕위를 계승한 프레드릭은 원래 헤센-카셀의 란트그라프인 카를 1세의 아들이었다. 그는 여러 전쟁에 참전한 군인으로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결혼한뒤에는 스웨덴의 전쟁에도 참여했었다.그의 치세동안 그는 귀족들을 억누를수 없었으며 결국 스웨덴의 "자유주의시대"를 형성하게 했다.
프레드릭 1세 (1676-1751)
- 스웨덴의 울리카 엘레오노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