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와 어린 시절
후에 스웨덴의 데시데리아 왕비가 되는 데지레 클라리는 마르세유의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클라리 가문은 원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스로 이민 온 가문이었죠. 데지레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클라리는 두 번 결혼했고 모두 열세 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중 데지레 클라리는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였으며 막내였기에 위의 언니 오빠들과 나이차가 많이 났었습니다.
프랑수아 클라리는 1751년 마르세유 상인의 딸이었던 테레제 가브리엘 프레송과 결혼했고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딸들인 마리 잔과 마리 테레즈와 아들인 에티엔 프랑수아였습니다. 데지레는 이 이복 언니들과는 함께 살지 않았는데 데지레의 두 명의 이복 언니들은 데지레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었죠. 두 언니 모두 마르세유의 상인과 결혼했었습니다. 아들인 에티엔 프랑수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그는 후에 새어머니와 어린 이복 동생들을 부양하면서 살았었으며 데지레가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만나게 된 원인도 에티엔이 체포되었고 이에 대해 알아보러 간 에티엔의 부인이 데지레를 시청에 놔두고 오면서였죠.
프랑수아 클라리는 첫 번째 아내가 죽은 뒤 프랑수아즈 로즈 소미즈와 재혼합니다. 이 프랑수아즈가 바로 데지레 클라리의 어머니가 되죠. 프랑수아즈 로즈 소미즈는 마르세유 항의 수석 엔지니어의 딸로 남동생인 저스티 앤 빅토르 소미즈는 군인으로 왕립군 장교로 복무했었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장군이 됩니다. 아마 이것으로 보아서 프랑수아즈의 가문은 귀족 출신이거나 상인이었던 프랑수아 클라리보다는 좀 더 높은 신분이었을듯합니다.
두 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들 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모두 일곱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인 니콜라로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1대 클라리 백작이 됩니다. 그의 딸인 제나이드 프랑수아즈 클라리는 베르티에의 아들인 2대 바그람공 나폴레옹 베르티에 드 바그람과 결혼했었습니다.
둘째 아들인 저스티엔은 혁명 와중 자살했고 이는 클라리 가문 사람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셋째 아들은 마르셀로 그 역시 20대 때 사망합니다.
큰 딸인 마리 앤 로즈는 1786년 앙투안-이 나스 안토니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지역 의회 서기관의 아들로 상인이었는데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오래도록 외국에 살았으며 매우 부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후에 그는 마르세유 시장이 되었고 사재를 털어서 시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합니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시장이었기에 위험한 처지에 놓였고 결국 가족과 함께 제노바로 떠나야 했었죠. 나폴레옹은 후에 안토니에게 생 조제프 남작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둘째 딸인 카트린 오노린은 1786년 귀족과 결혼했는데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버렸다고 합니다. 카트린은 이런 남편과 이혼한 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데지레가 있는 스웨덴에 가서 살기도 했었고, 죽기 직전에는 동생인 쥘리와 함께 피렌체에서 살았었습니다. 카트린의 아들은 군인으로 이모부인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군대에서 싸웠는데 이때 사망했다고 합니다. 카트린의 딸은 사촌인 클라리 백작과 결혼했습니다.
셋째 딸이 바로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결혼한 쥘리이고 막내가 바로 데지레였습니다.
안네마리 셀린코의 소설에서는 이런 복잡한 가족 관계가 다 나오지는 않습니다. 늘 함께했었던 언니 쥘리를 제외하면 큰오빠인 에티엔이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뤄지고 다른 가족들은 지나가면서 가끔 나옵니다. 이를테면 데지레가 조카들 중 한 명을 자신의 시녀로 삼는다던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간뒤 조카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던가 할 때 잠시 등장할 뿐이죠.
데지레 클라리는 바로 위의 언니인 쥘리와도 무려 여섯 살이나 차이 났습니다. 하지만 다른 언니 오빠와는 나이차가 훨씬 더 많이 났었죠. 이 때문에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자매들은 쥘리와 데지레 밖에 없었고 결국 둘은 매우 친한 사이가 됩니다.
데지레의 가족들은 언제나 서로를 돌봤는데 특히나 쥘리와 데지레는 자신들의 지위와 남편들의 권력이 높아지게 되면서 자신의 친정 가족들을 늘 챙겼다고 합니다.
데지레의 아버지는 매우 부유했는데다가 귀족 출신의 가문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맺었고 이 때문에 스스로 귀족이 되려고 청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수아 클라리는 딸들을 전통적인 상류층 교육방식으로 교육하려 했고 데지레 역시 언니인 쥘리와 함께 교육을 위해 수녀원에 갔었죠. 하지만 데지레는 공부와는 별 인연이 없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며 이 때문에 수녀원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고 이 때문에 데지레와 쥘리는 집으로 다시 되돌아야 했습니다.
혁명은 데지레 가족과 같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게 했습니다. 데지레의 형부였던 앙투안-이 나스 안투안의 경우 마르세유 시를 위해 많은 일을 했었지만 혁명 후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망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공포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기 처형된 상인들만 해도 엄청나게 되었죠. 이런 상황은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던 클라리 가문 사람에게도 위험으로 다가왔고, 이런 위험에 대한 압박은 결국 데지레의 오빠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게 되죠. 오빠의 죽음은 어쩌면 데지레에게 "혁명"이나 "정치"에 대한 공포를 심어줬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들 사이에 있었으면서 데지레나 데지레의 언니 쥘리 가 그들에게 휩쓸리지 않았던 것도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1794년 초 데지레의 아버지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은 큰오빠인 에티엔이 되죠. 에티엔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을 물려받았으며 새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들을 데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가족들은 함께 의지하며 살았고 가족들간의 결속력은 혁명의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기 적당한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클라리가문의 전화위복이 될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