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과 파혼
데지레의 삶에 가장 중요한 만남은 1794년 일어나게 됩니다. 데지레의 오빠인 에티엔은 두 번이 나 체포되는데 부유한 상인들은 중요한 타깃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데지레의 오빠가 체포되었을 때 데지레의 올케 언니는 남편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관청을 찾아가게 되죠. 이때 그녀는 열여섯 살이던 시누이 데지레를 데리고 갑니다. 마담 클라리가 이리저리 알아보러 다니는 동안 데지레는 잠이 들죠. 그리고 마담 클라리는 남편이 이미 풀려났다는 소식에 시누이를 데려왔다는 것을 잊고 집으로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잠들어있던 데지레를 깨워서 집으로 데려다 준 사람이 바로 조제프 보나파르트였죠.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곧 클라리 가문 사람들과 친해졌으며 조제프는 자신의 동생이자 장군인 나폴레옹을 소개하여줍니다. 그리고 코르시카에서 프랑스로 와야만 했던 조제프의 어머니와 다른 동생들 역시 클라리 가문 사람들과 가까워집니다.
사실 이 부분은 소설 데지레에 나오는 부분과 동일합니다. 아마도 안네마리 셀린코 역시 제가 읽은 데지레 왕비의 전기를 읽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제프와 데지레가 만나는 장면은 거의 동일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클라리 가문은 보나파르트 가문보다 더 부유했고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도 더 높은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의 와중에 가문을 보호하는데 보나파르트 가문의 두 형제들-조제프와 나폴레옹-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죠. 또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은 부유한 클라리 가문과 인연을 맺는 것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 두 가문은 자연스럽게 혼인으로 연결되는 것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 혼담이 오간 사람들은 조제프와 데지레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클라리 가문에는 또 다른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데지레의 언니인 쥘리였죠. 쥘리 역시 데리제와 똑같은 상속녀였는데 데지레가 밝고 명랑한 소녀였다면, 쥘리는 좀 더 온화하고 조용했으며 신앙심 깊은 여성이었죠.
아마도 보나파르트 가문 형제들 특히 나폴레옹은 클라리 가문의 두 상속녀와 결혼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여겼으며 형에게 데지레 보다는 쥘리와 결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데지레와 결혼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여겼을듯합니다. 조제프 역시 어리고 명랑한 소녀였을 뿐인 데지레보다는 좀 더 온화한 쥘리를 더 마음에 들어했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죠 그리고 둘은 1794년 여름에 결혼합니다.
나폴레옹과 데지레의 혼담은 사실 양가에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클라리 가문에서는 보나파르트 가문과의 연줄은 쥘리 한 명으로 족했죠. 가난한 친척들을 더 만드는 것은 그다지 원치 않았습니다. 또 나폴레옹의 입장에서는 데지레의 부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야심만만한 남자"에게 데지레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었죠. 데지레는 부유했지만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정치적 야심은 없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연줄도 연륜도 없는 철없는 데지레를 나폴레옹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데지레와 약혼 이야기가 나올 당시 그는 어머니의 친구이자 친구의 어머니인 마담 페르몽에게 청혼했었을 정도였습니다. 마담 페르몽은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며 로마제국의 황제의 후예라고 이야기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마담 페르몽은 나폴레옹의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데지레와 가까워진 것은 1794년 여름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풀려 난 후 자신의 경력이 끝나버렸다고 좌절하고 있었죠. 이동안 그는 형과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는데 이동안 그의 "외제니"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외제니와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둘은 약혼하게 됩니다. 비록 나폴레옹에게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긴 했지만 선량하고 늘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 했고 천진난만한 데지레에게 나폴레옹 역시 깊은 감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그와 데지레는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후에 죽기 직전 회고록을 남길 때도 그녀에 대해서 언급을 할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베르나도트랑 결혼해서 더 그랬을듯합니다만...)
하지만 나폴레옹이 데지레와 결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는데, 데지레는 나폴레옹이 자신 곁에 머물면서 고향인 마르세유에서 편안하게 살길 바랬을듯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야심이 큰 남자"였으며 그는 자신의 야심을 실행하기 위해 파리로 가게 되죠. 데지레는 나폴레옹을 따라 파리로 가지 않습니다. 파리는 데지레에게 낯선 곳이었으며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 친척, 고향을 떠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던 일이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에게는 파리에 있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에게 데지레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했을듯합니다. 1795년 9월 나폴레옹이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데지레와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하던지 아니면 결실을 맺던지"해야 한다고 적고 있을 정도입니다.
파리에서 나폴레옹은 파리의 살롱에서 여러 사람들을 소개받습니다. 나폴레옹은 바라스의 소개로 "노트르담 드 테미도르"라고 불렸던 마담 탈리엥의 살롱에 드나들게 됩니다. 이곳의 여인들은 나폴레옹이 원하던 조건을 가진 여성들이었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정치적으로도 민감했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들과 깊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여성들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던 그녀들이 혁명-특히 공포정치기에 살아남기 이해서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많은 이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해야만 했었죠. 그리고 이곳에서 나폴레옹은 마담 탈리앵의 친구였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를 만나게 됩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보다 여섯 살이나 더 많았지만 나폴레옹은 개의치 않았고 데지레와의 약혼 관계를 깬 뒤 조제핀과 1796년 결혼합니다.
데지레는 나폴레옹의 결혼에 충격을 받았고 처음에는 나폴레옹과 그를 자신에게서 뺏어간 조제핀을 미워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당신은 제 삶을 파괴했어요"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죠. 하지만 데지레는 오래도록 이 미움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처음에 조제핀을 만났을 때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오래도록 알고 지내게 되면서 그녀는 나폴레옹도 조제핀도 용서하게 됩니다. 데지레는 상냥하고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을 좋아했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걸 좋아했기 때문이죠. 이런 관계는 그녀가 결혼한 뒤에도 유지되었고 심지어 데지레가 프랑스의 적국인 스웨덴의 왕태자비가 된 뒤에도 이것은 지속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