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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an 15. 2016

님펜부르크 미인갤러리의 인물들(5)

아말리 폰 레르헨펠트,아들러베르크 백작부인



평생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진 아말리 폰 레르헨펠트(1808-1888)는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말리의 아버지는 바이에른 출신의 귀족이자 외교관이었던 막시밀리안 엠마누엘 폰 레르헨펠트백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귀족이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왕가 출신으로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테레제였습니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가문은 독일의 오래된 왕가중 하나로 테레제의 여동생은 프로이센과 하노버의 왕비였고,조카들중에는 바이에른 왕비, 러시아 황후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리의 출신 배경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것은 부모의 지위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관계때문이었습니다. 아말리의 어머니인 테레제와 아말리의 아버지인 레르헨펠트 백작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죠. 투른 운트 탁시스 가문의 수장과 결혼했던 테레제는 레르헨펠트 백작과 바람을 폈고 이때 태어난 아이가 아말리였다고 합니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테레제, 투른운트탁시스 공비,테레제와 여동생들은 당대 미인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아말리가 태어난 다음해 레르헨펠트 백작이 사망했으며 아말리는 한동안 여러 사람들의 손에 성장하게 됩니다만 결국 뮌헨에 있는 친가로 보내져 키워지게 됩니다.  테레제는 이 딸과 늘 연락을 하고 지냈었는데, 아말리는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신분이 좀 복잡했습니다.

아말리가 15살이 되던해 아말리는 "레르헨펠트"라는 성을 쓰는 것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레르헨펠트 백작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말리가 레르헨펠트라고 쓰는 것을 인정해줬던 헤센의 대공은 아말리가 성만 쓰는 것을 허용했을뿐 그녀에게 가문의 지위를 그대로 쓰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었죠.


친가가 있는 뮌헨에 살았던 아말리는 아름다움으로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아말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고 어린 나이에도 많은 숭배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러시아의 시인이었던 젊은 표도르 튜체프와 아말리의 남편이 될 러시아 외교관인 알렉산드르 폰 뤼크데너는 물론 바이에른의 루드비히1세와 그의 동생인 카를 왕자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루드비히 1세가 아말리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게 했습니다.


아말리는 17살에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뤼크데너 남작과 결혼했으며 남편을 따라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도 아말리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숭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당대 최고의 러시아 문학가였던 푸슈킨,니콜라이 1세의 절대 신임을 받던 신하였던 알렉산드르 폰 벤켄도르프는 물론이고 황제인 니콜라이 1세 조차도 아말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고 그녀에게 호의를 표시했을 정도였습니다.


주변에 많은 숭배자들이 있었지만 아말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으며 남편과의 사이도 의례적이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니콜라이 아들러베르크 백작을 만난뒤 그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뒤 그와 재혼해서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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