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베르나도트
베르나도트와 결혼한 데지레는 남편에게 큰 애정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늘 남편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게 됩니다. 베르나도트 역시 "악의 없이 철없는 행동을 하는 아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내가 세상사를 좀 더 알게 되길 바랬습니다. 아마도 베르나도트가 아내에게 너그러울 수 있었던 것은 둘의 나이차가 열네 살이나 됐던 것이 가장 중요했을듯합니다.
결혼초 데지레는 언니 쥘리와 형부와 함께 살았습니다만 이것은 베르나도트에게 문제가 되었고 결국 베르나도트는 파리에 집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데지레는 늘 언니와 자주 만났으며 다른 친척들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 중에서는 나폴레옹의 스캔들 메이커 여동생들도 있었죠. 엘리사는 야심이 컸고, 폴린은 "연애사건"으로 전 유럽이 다 알고 있었으며, 카롤린은 "거만하고 이기적"이었죠. 하지만 데지레는 이들 보다는 얌전하고 조용한 언니 쥘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베르나도트 역시 아내가 이런 영향을 받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데지레는 오래도록 남편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 언니와 형부에게 자주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데지레가 정치적으로 좀 더 덜 민감하게 행동하게 된 것은 1799년 아들인 오스칼(Oscar, 후에 스웨덴의 오스카르 1세)을 낳은 뒤였습니다. 오스칼이라는 이름은 나폴레옹이 제임스 맥퍼슨의 책을 읽고 거기 나오던 "영웅"의 이름을 자신의 대자가 되는 데지레의 아들에게 붙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오스카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나폴레옹이 대부라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시기상 나폴레옹이 직접 대부가 되었기 보다는 형인 조제프가 대부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이름은 나폴레옹이 붙여준 것은 맞는듯합니다.)
데지네는 남편이 자신 곁에 머물길 바랬지만 그는 프랑스군 장군이었고 후에는 나폴레옹의 육군 원수가 되는 사람이었기에 자주 집을 비워야 했었습니다. 게다가 베르나도트는 집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늘 주의해야 했기에 자주 다른 사람들의 살롱을 다녔으며 특히 마담 르카미에의 살롱에 자주 들렀었죠. 이 때문에 데지레는 남편이 자신 곁에 자주 없는 것을 무척이나 슬퍼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물론 아들의 양육에 집중하면서 훨씬 덜해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결혼 초기에는 남편의 임지를 따라 가기도 했었습니다만 그녀는 늘 파리에 머물게 됩니다. 데지레는 늘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런 삶은 남편의 부재를 어느 정도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데지레의 남편인 베르나도트는 아내에게 자주 "교육"에 대해 언급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데지레는 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듯합니다. 남편이 없는 동안 데지레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했으며 다른 파리의 여성들처럼 살롱에 드나들고 후에는 자신의 살롱을 갖게 됩니다. 이런 변화에 영향에 나폴레옹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되죠.
나폴레옹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과 부하들이 이룬 상류사회가 다른 나라나 이전 왕가에 못지 않게 되길 바랬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나폴레옹은 부르봉 왕가의 왕족과 옛 귀족들에 대해서 우대했는데 특히 오를레앙 공작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여성이 나폴레옹 주변 여성들의 조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데지레는 다른 여성들처럼 이 여성을 매우 존경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데지레 스스로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런 만남은 살롱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데지레는 살롱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좀 더 성숙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깊은 교류가 있었던 마담 르카미에나 마담 드 스탈과도 친분을 쌓기도 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데지레가 남편의 부재 동안 당시 다른 여성들과 달리 "경제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비록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인정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프랑스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을 많이 맡았기에 여성-특히 상류사회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
데지레는 베르나도트가 하노버의 총독으로 있던 시절 잠시 아들과 함께 남편과 하노버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었죠. 하노버에서 돌아온 뒤 데지레는 다시 파리를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데지레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하노버에서는 비록 남편과 아들이 있긴 했지만, 사랑하는 언니나 언니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힘들었을듯합니다. 또 당대에는 "프랑스 여성들은 자신의 나라를 떠나길 싫어한다"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였는데 데지레의 언니 역시 프랑스를 떠나 남편을 따라 가는걸 원치 않았었죠.
베르나도트가 "폰테 코르보"공 칭호를 받게 되자 데지레는 자신이 프랑스를 떠나 이곳으로 가야 할지 매우 걱정했다고 합니다만 베르나도트나 데지레 모두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지는 않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전쟁이 확대되는 동안 데지레는 파리에 머물고 있긴 했었지만 늘 남편 걱정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고 언제 다칠지 몰랐기 때문이었죠. 1807년 베르나도트는 전투에서 목에 총상을 입었고 데지레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서둘러 남편에게 가서 남편이 나을 때까지 간호할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 사이는 긴장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지만, 데지레는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기에 데지레의 관심은 남편의 안위와 가족 간의 평안함이었을듯합니다. 1810년경 베르나도트는 제국 내 지위를 사임하고 마담 레카미에의 살롱에 드나들면서 노닥거리는 삶을 보냈었습니다. 아마도 정치적 긴장은 심했었지만 데지레에게는 남편이 곁에 있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있는 이때가 나름 행복했던 시절이었을듯합니다.
나폴레옹은 이해 베르나도트에게 로마로 가라고 명령을 했고, 아마 데지레도 그와 함께 가야 했을듯합니다. 하지만 데지레는 로마로 가지 않게 되죠. 상황은 이제 남쪽의 따뜻한 곳에서 자란 데지레와 그녀의 남편을 추운 북쪽 나라로 가게 만들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