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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r 30. 2016

다시 또 스웨덴 왕위계승 문제

누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될 것인가?

칼 13세


스웨덴의 칼 13세에게는 적자가 없었으며 나이든 국왕 부부에게 적자를 바라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결국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들을 찾아야했었죠.


칼 13세와 헤드빅 엘리자벳 샤를로트 왕비는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장남인 구스타프를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그의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다른 인물을 골라야했습니다.

스웨덴의 왕위계승권은 매우 복잡했는데 기본적으로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머나먼 친척들을 찾아야했었죠.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장남 구스타프 (구스타프손 구스타프), 1830년대


처음에 쿠데타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이웃 나라인 덴마크의 국왕 프레드릭 6세를 스웨덴의 국왕으로 맞이하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를 합쳐서 옛 칼마르 동맹시절처럼 세 나라가 하나의 국왕 아래서 힘을 기를수 있다고 여겼었기 때문이었죠. 이 제안을 프레드릭 6세는 거절합니다. 아마도 기본적으로 스웨덴같이 신권이 강해서 사나운 귀족들이 있는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덴마크의 프레드릭 6세, 1806년


그 다음으로 찾은 인물이 덴마크 왕가의 분가 출신으로 노르웨이 총독으로 있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쇤더보리-아우구스텐보리의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였습니다. 이 가문은 덴마크 왕가의 제1분가였었는데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를 왕위계승자로 세운것은 스웨덴측이 노르웨이를 원했었고, 노르웨이에 인기가 있었던 그를 왕위계승자로 내세우면 노르웨이를 얻는데 유리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칼 13세는 물론 스웨덴의 많은 사람들이 아우구스텐보리의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는 것에 호의적으로 반응합니다. 아마도 칼 13세는  "군인 국왕"을 원하던 스웨덴 귀족들이 나폴레옹의 장군들중 하나를 국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나먼 친척이었지만 어쨌든 통치 가문 출신의 왕위계승자를 구한 것에 만족했을 듯합니다.


1810년 아우구스텐보리의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는 스웨덴의 칼 13세의 양자가 되어서 스웨덴의 왕태자 "칼 아우구스트"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노르웨이를 떠나 스웨덴으로 갔었죠.


칼 아우구스트 ,스웨덴의 왕태자,1809년



스웨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칼 아우구스트는 그의 지위를 오래 누리지 못합니다. 스웨덴에 도착한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칼 아우구스트는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군의 사열을 하던 도중 낙마했으며 이 낙마때문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스웨덴에서 매우 큰 혼란을 초래합니다. 그는 낙마로 죽었지만, 곧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아들인 구스타프손 구스타프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를 독살했다는 것이었죠. 이 상황은 심각하게 발전했는데 군중들에 의해서 구스타프손 구스타프를 지지하던 인물들중 핵심인사였던 악셀 폰 페르센 백작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될 정도였습니다.


칼 아우구스트의 죽음으로 스웨덴은 다시한번더 왕위계승자가 될 사람을 찾아야했습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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