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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r 09. 2016

권력은 다시 귀족들에게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퇴위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아버지인 구스타프 3세가 암살당했을때 14살의 나이였습니다. 이 때문에 숙부였던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이 섭정이 됩니다. 하지만 곧 그는 성년이 되었으며 1798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동안 그는 러시아의 여대공과의 혼담을 깨버리는 등의 일을 하므로써 외교 관계를 좀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만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처제였던 바덴의 프레데리케와 결혼하므로써 이런 외교 관계에 대한 문제를 메꾸려합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당시 많은 유럽의 군주들처럼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전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3차 동맹에 참여한 스웨덴은 유럽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프랑스 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결국 스웨덴령 포메른 지방은 프랑스 군이 점령해버립니다. 결국 틸지트 조약으로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세 나라만이 프랑스와의 조약을 거부했는데 섬나라였던 영국과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 그리고 스웨덴이었죠.


이런 상황은 스웨덴에 불리한것이었는데, 러시아 역시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은 상황이었기에 스웨덴이 프랑스와의 조약을 거부하면서 러시아는 스웨덴을 침공한 명분을 마련합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1세와 그 황후는 구스타프 4세 아돌프에게 프팡스와의 평화를 거부하면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할수도 있다는 언질을 줬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프랑스와의 평화를 거부했으며 결국 핀란드는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핀란드를 뺏기게 되자 스웨덴 귀족들은 국왕을 몰아내기로 결심합니다. 국왕의 실책으로 인해서 스웨덴의 중요한 영토중 하나인 핀란드를 뺏기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결국 1809년 3월 스웨덴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그의 가족은 스웨덴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귀족들에 의해서 체포된 구스타프 4세 아돌프


귀족들은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숙부인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을 국왕으로 옹립합니다. 그리고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그의 아들들의 계승권을 박탈하고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를 위해서 그의 출생때 관련된 스캔들을 이용했었습니다. 당시 이미 구스타프 3세의 아들이라고 인정받았던 구스타프 4세 아돌프에 대해서 귀족들은 그가 구스타프 3세의 아들이 아니라 문크 백작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와 그의 아들의 계승권을 박탈해버렸죠.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어떻게든 왕위를 되찾거나 적어도 아들이 왕위를 잇게 하려합니다. 국왕이 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숙부인 칼 13세와 사실상 국왕 대신 국정에 관여했던 헤드빅 샤를로트 엘리자벳 왕비 역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아들인 구스타프를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실권을 잡은 귀족들은 완강하게 이들을 거부했으며 이것은 또한번 스웨덴의 왕위계승 문제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숙부, 칼 13세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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