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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pr 06. 2016

자꾸 스웨덴 왕위계승자 문제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는 어떻게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었나

1810년 6월 나폴레옹의 궁정에는 스웨덴으로 부터 소식하나가 전해집니다. 스웨덴의 추정왕위계승자였던 칼 아우구스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과 함께 스웨덴 국왕인 칼13세의 사절이었던 오토 뫼르네르 남작은 나폴레옹에게 국왕의 서신을 하나 전하게 됩니다. 이 서신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로 덴마크 국왕이나 죽은 왕태자의 형이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는 것에 대한 프랑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죠. 사실 이 서신이 전해졌을때, 이것은 나폴레옹의 궁정에서 크게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당시에 러시아와의 적대를 될수 있는 대로 피해보기 위해 북유럽의 일에 관여하길 원치 않았었습니다.


칼 아우구스트, 스웨덴의 왕태자


하지만 국왕의 편지를 전한후 뫼르네르 남작은 프랑스에 있던 스웨덴 장군이었던 브레데 백작을 통해 한명의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당시 면직당해서 파리의 살롱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장군이었습니다. 남작은 스웨덴 내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어쩌면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왕위계승 후보자가 될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남작이 베르나도트와 접촉한것은 스웨덴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그와 다른 동료들의 개인적인 의지였습니다.

 

스웨덴 내에서는 러시아쪽의 올덴부르크 대공이나, 기백이 없는 덴마크쪽 왕족들을 왕위계승자로 원치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한때 잘나갔던 스웨덴은 이 때쯤에는 점점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스웨덴의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러시아의 한 귀족은 당시 스웨덴에 대해서 "이제 평화롭게 사망할것이며 아무것도 남지 않을것이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었죠. 이때문에 스웨덴 귀족들, 특히 장교들은 스웨덴의 영광의 시기였던 구스타프2세 아돌프 시절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보들은 바로 잘나가는 나폴레옹의 육군 원수들이었다. 이에 대한 감정은 광범위한것이었는데 칼 구스타프가 사망했을때 총리였던 악셀 폰 페르센 백작은 "이제 프랑스 육군 원수를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기회를 잃어버렸다."라고 할정도였습니다.


악셀 폰 페르센 백작,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에 나오는 그 페르센 백작입니다. 그는 스웨덴에서도 프랑스처럼 혁명이 일어날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뫼르네르 남작은 임무가 끝난후 개인자격으로 프랑스에 남았습니다. 그는 베르나도트와 접촉했고 그를 왕위계승자로 지지할 의사를 밝혔죠. 북유럽쪽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나폴레옹의 육군원수가 바로 베르나도트였습니다. 베르나도트는 하노버와 헤센지방의 총독이었는데 이때 매우 잘 통치했었습니다. 특히 한자 동맹을 다시 살려서 이지역의 경제에 크게 기여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뤼벡에서 스웨덴 포로들을 사로잡았을때 포로들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해주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스웨덴 장교들 사이에서는 베르나도트에 대한 인기가 높았었죠. 뫼르네르 남작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신들이 왕위계승자로 베르나도트를 정한 이유중 하나가 그와 나폴레옹과의 관계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의 관계는 스웨덴이 독립을 유지하면서 스웨덴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것이라 여겼었죠.


 

칼 오토 뫼르네르 남작, 베르나도트를 왕위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열정적으로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베르나도트는 뫼르네르 남작의 제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친구였던 브레데 백작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스웨덴인인 백작은 만약 베르나도트가 왕위 후보자가 된다면 뫼르네르가 적극적으로 지지할것이며, 큰 세력을 얻을것이라고 이야기하죠. 결국 베르나도트는 뫼르네르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뫼르네르는 자신은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규합할것이라고 이야기했으며, 베르나도트에게 황제에게 그가 스웨덴 왕위계승후보자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리길 원합니다. 그리고 베르나도트는 브레데 백작과 상의한뒤 나폴레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죠.


나폴레옹이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스웨덴 대사를 불렀지만 스웨덴 대사는 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뫼르네르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생각이었을뿐 스웨덴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뫼르네르는 스톡홀름으로 돌아가자마자 체포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여전히 베르나도트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의 육군 원수, 그는 나폴레옹과 좀 껄끄러운 사이였습니다.


이전까지 나폴레옹은 스웨덴 내정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지리적으로 너무 고립되어있을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러시아와의 관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스웨덴 인들이 "프랑스 육군 원수"를 왕위계승자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나폴레옹 역시 개입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만의 유럽 경영 목표가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인척들을 프랑스 주변의 여러 나라들의 통치자로 만들어서 프랑스 제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 문제에 대해서 후보들을 추천하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이 스웨덴 왕위계승자로  처음 추천한 사람은 양아들이었던 외젠 드 보아르네였습니다. 그 당시 막 재혼했었던 나폴레옹은 여전히 외젠 드 보아르네를 아들로 사랑했으며, 마리 루이즈와의 결혼으로 그가 계승자 지위에서 멀어진것을 보상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황후인 마리 루이즈가 왕위를 위해 신교로 개종한다는것은 말도 안된다고 이야기했고, 외젠 역시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죠. 스웨덴에서는 그에 대해서 베르나도트 외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생각했지만 그는 너무나 "온화하고 좋은 인물"이었기에 강한 스웨덴을 만드는것에 무리라고 여겼으며, 차라리 바이에른 왕가 출신인 아름다운 그의 부인이 왕비감으로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외젠은 나폴레옹에 너무 충성스러웠기에 스웨덴의 독립을 보장하지 못할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외젠 드 보아르네, 나폴레옹의 양자, 그는 나폴레옹에 매우 충성스러웠습니다. 그의 딸인 요세피나는 후에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다음으로 나폴레옹은 의붓딸인 오르탕스의 자녀들을 위해 동생 루이를 스웨덴 왕으로 만드는것을 고려하기도 했었습니다. 오르탕스의 자녀들 역시 제국의 계승자였지만, 마리 루이즈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지위를 상실할것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루이는 형의 안티였으며, 스웨덴에서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대상이 아니었죠.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그녀는 양아버지이자 시아주버니였던 나폴레옹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정 반대였었죠.


나폴레옹은 자신의 가족들은 개종하는것이 힘들기에 스웨덴 왕위계승을 받아들일수 없지만, 자신의 육군 원수들은 가능할것이라고 스웨덴에 이야기합니다. 나폴레옹은 껄끄러운 사이였던 베르나도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대신 자신의 최측근들이었던 베르티에,마세나 등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베르나도트가 아니라면 외젠 드 보아르네 정도만을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죠.

결국 나폴레옹은 스웨덴의 내정에 간섭하는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마지 못해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 선출 후보자가 되는것에 동의합니다.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마지못한 승락이 있은후, 베르나도트는 정식으로 왕위계승후보자로 선출되기 위한 선거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노버 총독시절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연락을 했으며 그들 중 한사람에게 선거 운동을 부탁합니다. 베르나도트가 선거운동을 부탁한 사람은 유능한 상인으로 북유럽에 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베르나도트 부부와 그의 "잘생긴 아들" 오스칼의 초상화를 그려서 마구 뿌리고 다녔으며, 베르나도트가 얼마나 부자이며, 왕국에 큰 부를 가져다 줄수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칼을 가지고 노는 어린 오스킬 베르나도트의 모습은 베르나도트가 국왕이 된다면, 왕위계승자 문제로 더이상 걱정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스웨덴 사람들에게 충분히 각인 시키는 것이었죠.


"아버지의 큰칼"을 가지고 있는 어린 오스칼 베르나도트


이 선거 운동 동안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반응을 걱정했으며, 이에 혹시나 프랑스 대사가 스웨덴에 있다면 자신이 프랑스 육군 원수를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대사를 프랑스로 소환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선거 결과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의 의회에서 왕위계승자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국왕 부부는 평민출신의 나폴레옹의 장군을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합니다.


칼 13세와 헤드빅 엘리자벳 샤를로트 왕비는 여전히 구스타프손 구스타프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그가 안된다면 올덴부르크 공작이나 덴마크쪽 방계 왕족들중 한명을 선택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의회는 국왕 부부에게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를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결국 칼 13세는 프랑스의 베르나도트 장군을 양자로 받아들여서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로 승인하게 됩니다.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면서 칼 요한 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미 스웨덴 왕위계승자로써 행동을 했으며, 황제가 연 가족 모임에 스웨덴 군복을 입고 가기도 했었죠.


베르나도트가 떠나기전 나폴레옹은 어느날 꿈을 꿨다고 합니다. 두 척의 배가 바다에 있었는데 하나는 자신의 배였고 다른 하나는 베르나도트의 배였으며, 베르나도트의 배는 자신과 다른방향으로 떠나고 자신의 배만 폭풍우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베르나도트가 떠난후 나폴레옹은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다. 그는 그의 취향이 있었고, 나는 나의 취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왕위계승자로 선출된것은 나폴레옹 시대의 최고의 경이로운 일이었다. 유능한 인물이 승진하고 많은 군인들이 나폴레옹의 의지로 왕족이 되었던 시대에, 나폴레옹의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력과 운으로 왕족이 된 사례였기때문이었죠. 재미난 것은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출세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과 마찰을 빚던 베르나도트였다는 점 일것입니다.


1810년 11월 5일 프랑스의 육군 원수였으며, 폰테 코르보 공이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장군은 스웨덴 의회에서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 칼 요한으로 승인받았습니다.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 칼 요한, 1810년


자료출처

Bernadotte and Napoleon 1763-1810 (sir D.P.Batton,1921)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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