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Oct 01. 2017

알고 결혼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모두 아내 탓!이야

가벼운 역사 이야기: 자녀들이 아플때 알폰소 13세의 대처법

에스파냐의 알폰소 13세는 태어나면서 부터 국왕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인 알폰소 12세는 아내가 임신한 중에 사망했고, 에스파냐에서는 태어날 아이가 아들일 경우 그 아이가 국왕이 되어야한다고 선포했으며 아이가 태어날때까지 잠시 왕권을 정지시키기도 했었다. 이것은 복잡한 에스파냐 정치적 상황때문이었는데, 만약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에스파냐는 다시 한번 내전에 휩쌓일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알폰소 12세의 유복자는 모두가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일폰소"라고 불리게 된다. 물론 13세라는 불운의 숫자가 붙을 것을 걱정했다고 하지만 태어난것 자체가 좋은 징조로 받아들여졌기에 이런 불운을 날려버릴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고도 한다. 

(음..다른 이름을 지었어도 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수 없었을 테니 차라리 그냥 저렇게 지은것이 나을수도...)


임신중 상복을 입고 섭정으로 맹세 중인 알폰소 13세의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


태어나면서부터 국왕이었기에 모후이자 섭정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를 제외하고 알폰소 13세에게 함부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그는 자라면서 국왕으로써의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성장한다. 사실 그의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태어나면서 부터 국왕이라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지위로 인한 자신감은 그가 매우 매력적이고 활기찬 사람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알폰소 13세


세월이 흘러서 이제 알폰소 13세도 결혼을 할 나이가 되었다. 에스파냐 왕비라는 지위는 매우 오래되고 전통있는 높은 지위였기에 많은 유럽 왕가에서 신부감을 선보이려했었다. 알폰소 13세의 모후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그녀는 아마도 친정쪽의 수많은 합스부르크 분가쪽의 여성들을 며느리감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국왕을 노리는 사람이 한명있었다. 바로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였다. 에드워드 7세는 유럽 외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특히 그는 친척관계를 통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주력했다. 그의 조카는 독일의 황제였고, 처조카는 러시아의 황제였다. 그리고 덴마크나 그리스 포르투갈등과도 친척관계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에스파냐 국왕과 친척관계를 맺는데 열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7세에게 니콜라이2세는 처조카이고, 알렉산드라 황후는 조카입니다.


에드워드 7세는 미혼이었던 조카인 코넛의 패트리샤를 그의 신부후보로 결정했다. 패트리샤의 언니인 마거릿은 포르투갈 왕태자와 선봤지만 결국 이집트에서 사랑에 빠져서 스웨덴 왕위계승자와 결혼하기로 하고 바로 약혼했었다. 역시 언니처럼 우아한 왕족으로 알려졌던 패트리샤를 에스파냐 국왕과 결혼시키려 한 것이었다.


코넛의 패트리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살짝 빗나가게 된다. 알폰소 13세가 영국에 왔을때 패트리샤를 선보이기로 했는데 정작 패트리샤는 국왕에게 별 마음이 없었고, 자신에게 별 마음 없는 패트리샤처럼 알폰소 13세 역시 패트리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국왕은 금발머리가 매력적이었던 한 여성을 보고 반하게 된다. 물론 그녀도 역시 에드워드 7세의 조카이기도 했다.

알폰소 13세가 반한 여성은 바로 에나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였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의 딸로 에드워드 7세의 조카였지만, 에드워드 7세는 물론 다른 누구도 그녀가 에스파냐 왕비가 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코넛의 마거릿과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의 결혼식때, 맨 왼쪽이 에나, 맨 오른쪽이 패트리샤


가장 큰 이유는 에나의 가문이 상대적으로 낮은 취급을 받던 귀천상혼한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나의 할아버지인 헤센의 알렉산더는 여동생이 황태자비로 있는 러시아로 가서 군인으로 복무했는데 그때 여동생의 아름다운 시녀에게 반해버렸다. 율리아 하우케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원래 평민 출신으로 아버지가 폴란드에서 장군이 되면서 백작 지위를 얻었었고, 폴란드에서 봉기가 일어났던 때 아버지가 황제의 동생을 보호하려다 죽었기에 그 공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였음에도 황태자비의 시녀로 일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헤센의 알렉산더와 율리아 하우케는 결혼했고 둘의 결혼은 귀천상혼으로 아이들은 모두 어머니의 지위인 "바텐베르크 공/공녀"지위를 썼었다. 그리고 에나의 아버지는 이 바텐베르크 가문의 셋째아들이었다. 

게다가 에나는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으로 혈우병 유전자의 보인자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었다. 왜냐면 에나의 남동생중 한명이 혈우병환자였기 때문이었다. 


베아트리스 공주와 네명의 자녀들, 딸이 에나입니다.


이런 두가지 조건은 에스파냐 왕비가 되기에 치명적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알폰소 13세는 이런 조건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에나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모후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 조차도 아들을 설득할수 없었기에 결국 알폰소 13세와 에나는 결혼하게 된다.


에스파냐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에나와 알폰소 13세의 결혼식날 폭탄 테러가 일어나 국왕 부부의 마차 바로 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일이 벌어지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갓 결혼한 부부의 행복을 방해할수 없었다. 아마 부부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결혼후 에나가 임신한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불행은 시작된다.


에스파냐의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


알폰소 13세와 에나의 첫 아이는 모두가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모두에게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이 행복은 곧 악몽으로 바꾸게 된다. 바로 아이가 혈우병 환자였던 것이다. 첫째 아들이 혈우병환자인것에 알폰소 13세는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모두가 결혼할때 말렸던 이유가 이제서야 너무나 크게 와닿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이ㅡ 충격은 곧 태어난 둘째 아들은 혈우병 환자가 아니었기에 좀 완화되었다. 하지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오는데 둘째아들은 어려서 크게 아팠으며 수술을 받은뒤 청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두 아이가 아프게 되면서 부부간의 사이도 점차 멀러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더 태어났지만 점차 부부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막내아들마저 혈우병 환자로 태어나자 알폰소 13세는 더이상 참지 못했다고 한다.


장남인 알폰소와 함께 있는 에나


알폰소 13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혈우병을 물려준 아내를 비난했다. 심지어 그는 아내에게 혈우병 보인자를 물려줬던 장모인 베아트리스 공주와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알폰소 13세는 국왕으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좌절감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픈것은 부모에게는 크나큰  시련이며 좌절감을 가져오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좌절감을 모르고 살았던 알폰소 13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아내를 비난하는것으로 해소했을 것이다.


알폰소 13세


하지만 다 알면서 결혼해놓고 막상 저러는 것은 진짜....--;;;;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집안 아니랠까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