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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ul 04. 2016

마누라는 싫지만 딸은 너무 좋아!-첫번째

스웨덴의 칼 15세와 로비사 왕비 그리고 둘의 딸인 로비사 공주

스웨덴의 칼 15세는 프로이센 공주와의 혼담을 깨버리는 바람에 집안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됩니다.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성들을 만났던 그는 우아하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했는데 그의 기준으로 볼때 프로이센 공주가 기준에 좀 못미쳤던듯합니다.


스웨덴의 칼 15세


문제는 그때까지도 스웨덴 왕가를 "벼락부자"취급하던 유럽 왕가였기에 칼 15세가 프로이센 같은 대가문과의 혼담을 깬것은 큰 타격이었습니다. 물론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러시아 여대공과의 혼담을 깨버리기도 했지만 그거야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어머니는 유서깊은 덴마크 공주였고, 당시 스웨덴 왕가 역시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이었기에( 러시아 황제 역시 같은 가문) 적당히 무마할수 있었던것이고, 칼 15세의 할아버지인 칼 14세 요한과 할머니인 데시데리아 왕비는 평민출신이었기에 유럽의 여러 왕가에서 좀 얕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칼 14세 요한과  가족들, 칼 14세 요한이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아이가 칼 15세입니다.


어쨌든 이 상황으로 칼 15세는 혼담을 주선했던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왕비(칼 15세의 어머니인 요세피나 왕비의 이모)를 비롯해서 온 가족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그래도 그는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였고 다시 적당한 결혼상대를 찾습니다. 선택된 여성은 네덜란드 국왕과 프로이센 국왕의 외손녀였던 루이제였습니다. 사실 이 혼담은 프로이센 공주보다는 훨씬 격이 떨어졌는데, 이전에 혼담이 오간 프로이센 공주는 비록 당시 국왕의 조카이긴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자식없는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루이제는 백부에게 후계자가 있었고 루이제는 그저 네덜란드 국왕의 손녀이자 네덜란드 국왕의 조카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뭐 그래도 일단 네덜란드 공주와의 결혼이었기에 어느정도 격은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칼 15세는 다시 아내가 될 네덜란드의 루이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루이제의 외모에 칼 15세가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네덜란드 왕가는 부유하다고 생각해서 혼수가 많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정작 루이제의 혼수는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칼 15세는 물론 왕실 가족 전체가 실망스러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진행되는데 이번 혼담마저 깬다면, 안그래도 얕잡아보는 유럽의 여러 왕가에서 딸을 주려하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스웨덴 궁정 예복을 입은 로비사 왕비


이렇게 결혼한 칼 15세와 네덜란드의 루이제는 매우 불행했었습니다. 스웨덴에서 로비사로 불렸던 루이제는 남편의 마음에 들려고 엄청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순종적이고 세련된 여성을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정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패션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칼 15세는 대놓고 아내를 무시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로비사 왕비가 스트레스로 궁정생활을 힘들어하게 했고 공식행사에 히스테릭 증상을 보일정도로 악화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불행한 결혼생활에서도 후계자를 낳는것이 의무였습니다. 둘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첫째는 딸이었고 둘째는 후계자가 될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은 일찍 사망했고 둘 사이에서는 더이상의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됩니다.


칼 15세와 로비사 왕비의 딸은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로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로비사 공주의 외모는 어머니와 너무나 많이 닮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그렇게나 무관심했던 칼 15세는 아내와 붕어빵인 딸 로비사는 너무나 사랑하게 됩니다. "세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로비사 공주에 대해서 칼 15세는 딸이 원하는것을 모두 다 해주려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딸에게 행복한 가족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무시했던 아내와 자주 함께 지낼정도였으며, 아내인 로비사 왕비가 남편이 딸의 버릇을 버려놓을까봐 도리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칼 15세는 딸이 못생긴 악동이지만 딸과 함께 있으면 너무나 유쾌하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린시절의 로비사 공주


아마도 칼 15세는 노르웨이 문제만 아니었다면 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을 정도였을 것입니다만, 당시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하지 않았던 노르웨이 때문에 딸에게 왕위를 물려줄수 없었습니다. 대신 칼 15세는 딸을 덴마크 왕위계승자에게 시집보냈으며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해줬다고 합니다.


시누이인 덴마크의 티라와 함께 있는 로비사 공주


더하기

딸인 로비사 공주와 어머니인 로비사 왕비의 초상화나 사진을 보면 정말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칼 15세는 아내는 진짜 무시하고 살았지만, 딸은 너무너무 사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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