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치 후작부인 마리아나 (1802-1870)
플로렌치 후작부인인 마리아나 Marianna Marchesa Florenzi (1802 - 15 April 1870)는 라벤나의 바치네티 백작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나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교육도 잘받았는데 그녀 스스로 문학과 철학에 대해 매우 열성을 가지고 공부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나는 당대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교육받은 몇안되는 여성중 하나였습니다.
1819년 17살의 마리아나는 페루자의 귀족이었던 플로렌치 후작과 결혼했고 결혼후에 플로렌치 후작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아마 마리아나는 결혼후에 당대 많은 상류층 여성들처럼 살롱을 열었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위트있으며 교육도 매우 잘 받았던 마리아나는 살롱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녀의 명성은 이탈리아를 넘어서 유럽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를 만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루드비히 1세와 마리아나가 잠시 연애관계였을것으로 추정합니다. 재미난것은 플로렌치 후작부인의 아들인 루도비코는 공식적으로는 플로렌치 후작의 아들이라고 언급되지만, 그의 생김새가 바이에른 가문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가 루드비히 1세의 아들이 아닐까 추정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드비히 1세와 마리아나는 평생에 걸쳐서 친구로 남았습니다. 그녀와 루드비히 1세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또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루드비히 1세는 마리아나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구했는데 그녀의 철학적 관점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철학에 평생 관심이 많았던 마리아나는 독일 철학자들의 많은 책들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었습니다. 또 그녀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남편인 플로렌치 후작이 죽은 후인 1833년 마리아나는 재혼을 하게 됩니다. 상대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소르본 대학의 교수였던 샤를 웨딩턴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샤를 웨딩턴과 만나게 했고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던듯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