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1세의 신하였던 알렉산드르 폰 벤켄도르프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는 즉위 직후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황제는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합니다. 이런 경험은 니콜라이 1세가 러시아에서 강력한 독재 정치를 하게 된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짜르의 말이 곧 법이었으며 감히 짜르에 대항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게 됩니다.
니콜라이 1세의 이런 강력한 독재 정치의 원동력이 되는 한 축은 바로 비밀경찰 조직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정보원들을 심어놨으며 이들을 관리하던 조직이 바로 이 비밀경찰 조직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오래도록 황제의 권한보다 신하들인 귀족들의 권한이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불안정했던 러시아 정치때문이었는데 니콜라이 1세는 이런 귀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비밀경찰의 정보원들을 활용합니다. 이 정보원들은 여러 이유때문에 정부에 협력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었는지는 잘 알수 없지만 당대 한 기록에서는 "그들은 내 스프에도 존재한다"라고 할정도였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이 비밀경찰 조직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황제는 이 비밀경찰 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러시아의 명망높은 귀족들이 이 비밀경찰 조직에 복무하도록했으며 이 조직의 수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폰 벤켄도르프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니콜라이 1세 시절 러시아에서는 감히 황제나 황족들을 질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수없었지만, 니콜라이 1세는 벤켄도르프에게 자신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것을 허용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황제에 대한 불만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황제의 권력은 절대적인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재미난 사건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최고 권력자인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황제에 대한 불만은 2인자이자 황제가 과도하게 권력을 부여해준 벤켄도르프에게 몰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벤켄도르프에게 적대적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들은 벤켄도르프가 황제의 신임을 잃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죠.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오는듯합니다.
1837년 러시아 최고의 문학가였던 푸슈킨(Pushukin)이 결투중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벤켄도르프는 푸슈킨이 결투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막지 않았고 결국 러시아 최고의 문학가는 결투로 인해 사망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서 니콜라이 1세가 진노할 것이라 여겼으며 벤켄도르프가 황제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재미난 것은 벤켄도르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푸슈킨의 사망이후 벤켄도르프는 황제의 진노를 두려워했으며, 황제에게 질책당하는 것보다 스스로 사임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유없이 사임할수 없었기에 벤켄도르프는 병을 핑계로 황제에게 사임을 청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황제가 이 사임을 받아들일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는 "아픈" 벤켄도르프에게 문병을 하러 갔으며, 그에 대한 신임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황제의 병문안 이후 벤켄도르프의 실각을 예상했던 많은 이들이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 2인자인 벤켄도르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벤켄도르프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황제가 다녀간 뒤 벤켄도르프의 집에는 방문자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울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자료출처
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Radzinsky)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