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틸 왕자와 릴리안 왕자비
1976년 스웨덴에서 한 노부부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신랑은 64살의 벨틸 왕자였으며 신부는 61살의 영국 출신의 릴리안 데이비스였습니다. 이들은 만난지 33년만에 정식으로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결혼하지 못한 것은 복잡한 스웨덴 왕위계승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벨틸 왕자는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코넛의 마거릿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위로는 두명의 형과 누나 한명이 있었고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넷이나 되었기에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후계자 문제가 걱정없을듯 보였습니다만, 자식들이 자라면서 그렇지 않게 됩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장남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는 다섯아이를 뒀는데 아들은 단 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전에 사망합니다. 문제는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죽었을대 왕실에서 왕위계승권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은 구스타프 6세 아돌프(당시 왕태자)와 그의 셋째아들인 벨틸 왕자와 만 한살도 안된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의 아들이었던 칼 구스타프 왕자(현 스웨덴 국왕)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스웨덴 왕가는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차남은 훨씬전 귀족여성과 결혼했고,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막내아들이었던 칼 요한 왕자는 큰형에게 아들이 태어나자 역시나 약혼녀였던 평민 여성과 결혼해버렸습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난처해진 사람은 바로 벨틸 왕자였습니다. 만약 칼 구스타프 왕자가 성인이 되기전 구스타프 5세와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사망한다면 "섭정"이 필요했는데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한 숙부들보다는 왕위계승권을 가진 숙부가 섭정을 해야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벨틸왕자가 난처해했던 이유는 그가 사랑했던 여성 역시 평민 출신의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국 출신의 릴리안 데이비스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릴리안 데이비스는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모델일등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차대전쯤에는 이미 남편이 있었던 유부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 사이는 멀어졌으며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되죠. 벨틸 왕자는 2차대전중 런던에 머물렀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릴리안 데이비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별 감정이 없었다고 합니다만, 릴리안이 머물던 곳이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이 사실을 안 벨틸 왕자가 릴리안의 안위를 걱정해서 그녀를 찾아오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둘의 관계에 대해서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매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혼녀였던 릴리안을 못마땅해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도 옛날 사람이었고 아마 그 역시 이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게다가 평민 출신이었던것도 한몫했을듯하구요.
그리고 얼마뒤 국왕 구스타프 5세가 사망하고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즉위하면서 벨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더 멀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린 조카와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야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가 귀천상혼한다면 문제가 될것은 당연했다고 합니다. 의무를 중요시했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아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결혼하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벨틸은 릴리안과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릴리안 역시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수는 있지만 대중의 눈앞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벨틸과 릴리안은 서로 함께하기 위해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1973년 사망합니다.그의 손자이자 왕위계승자였던 칼 구스타프가 성인이 된 뒤에 사망한 것이었죠. 그리고 국왕이 된 칼16세 구스타프는 평민 출신의 여성인 실비아 좀머라이트와 결혼하므로써 사실상 그의 세대부터 귀천상혼제도를 없애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왕가를 위해 결혼하지 않고 함께 지냈었던 벨틸 왕자와 릴리안의 결혼을 정식으로 승인해줍니다. 1976년 벨틸 왕자와 릴리안 왕자비는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물론 조용히 결혼식을 치뤘는데 이때 국왕 부부가 참석했었습니다. 이후 릴리안은 남편인 벨틸 왕자의 지위에 따라 "스웨덴의 릴리안 왕자비, 할란드 공작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벨틸 왕자 부부는 국왕과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국왕의 자녀들은 릴리안 왕자비를 정말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벨틸 왕자 부부 역시 국왕의 자녀들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벨틸 왕자가 사망한뒤 릴리안 왕자비는 남편을 회상하면서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 사랑이야기가 전부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릴리안 왕자비는 2013년 알츠하이머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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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가 사람들은 릴리안 왕자비를 좋아했었으며 특별히 여겼었습니다. 이를테면 스웨덴의 제 1왕위계승자인 빅토리아 공주가 남편과의 약혼을 발표할때 입고 나온 옷에 단 브로치는 벨틸왕자와 릴리안 왕자비가 선물한 브로치였다고 합니다.
또 칼 필립 왕자의 아들의 세례명중에 하나에도 역시 벨틸이라는 이름이 들어갑니다.
그림출처
1.http://www.itv.com/news/story/2013-03-11/welsh-born-princess-lilian-of-sweden-dies/
2.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