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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13. 2018

베르나도트 : 프랑스에서의 삶(13)

1799년-1802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자신의 지위가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자신의 정적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1799년 11월 베르나도트는 동서였던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확답아래 아내와 함께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나폴레옹은 쿠데타에 반대했었던 주르당이나 오주로에게도 지위를 부여해서 화해의 제스쳐를 취했으며 베르나도트 역시 파리로 돌아가서 지위를 얻었다. 사실 나폴레옹의 가족들은 베르나도트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고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이 다른 장군들 누구보다도 베르나도트를 꺼렸었지만 그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제1통령시절의 나폴레옹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에게 당면 과제는 바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었다.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만들었던 이탈리아가 위협받고 있었으며 나폴레옹은 이제 이탈리아로 가야했었다. 가기전 나폴레옹은 수도인 파리와 가까운 서부방면 사령관직을 베르나도트에게 부여했다. 이곳은 방데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방데는 오래도록 내전을 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했다. 베르나도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것에 어느정도 실망스러웠는데 특히나 "방데"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의 사령관이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방데 지역은 프랑스 혁명전쟁 초기부터 내전이 시작되었던 곳이다. 그나마 오슈가 도착한뒤로 방데를 진압하긴 했었지만 이 당시 다시 방데는 여전히 프랑스 공화국의 위협요소로 여겨졌다. 영국은 여전히 방데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상륙을 시도하려했었으며, 이전에 엄청나게 핍박받았던 방데지역 사람들은 공화국군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방데 농민병의 지도자중 한명은 "내전으로 얻을수 있는 것(명예)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언급했었으며 이것은 공화국군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베르나도트, 프랑스 혁명전쟁 시절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를 방데로 보낸 배경은 사실 자신의 정적을 까다롭고 힘든 상황에 몰아 넣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이나 그 가족들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실패할 경우 가족들의 처지를 걱정했다.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의 정적이었지만, 조제프의 동서였으며 나폴레옹의 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수도와 가까운 지역의 사령관인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의 가족들을 충분히 보호할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며 이 때문에  비록 베르나도트에게는 실망스러웠을 서부방면 사령관직으로 보냈던 것이 더 컸다.(물론 어렵고 폼안나는 지위라서 더 좋았을 것이긴 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마렝고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나폴레옹은 영광을 누렸다.


마렝고 전투


위협을 제거하게 되면서 나폴레옹은 다시 베르나도트를 경계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의 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문에 수많은 떠도는 음모 이야기들에는 베르나도트의 이름이 빠지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안그래도 베르나도트를 경계하던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에 대해서 더욱더 경계하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한다. 


서부지역 사령관 지위는 베르나도트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며 베르나도트는 기회를 잡아 파리로 잠시 돌아가서 어떻게든 다른 지위를 얻으려 했다. 아마도 그는 죽은 자신의 다른 동료들이었던 마르소와 클레베르 처럼 방데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 역시 프랑스의 외국인 적과 싸우고 싶었지 프랑스 인들과의 내전은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에게 원하는 지위를 주지 않았다.  베르나도트가 원하던 지위는 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는데, 베르나도트가 원했던 지위를 얻었던 뮈라는 지위를 얻기 전 나폴레옹에게 "브뤼메르 18일에 누가 당신편에 섰는지 기억하라"라고 편지했었으며 이것은 아마 나폴레옹이 늘 기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뮈라, 나폴레옹의 매제


베르나도트는 연줄을 동원해서 어떻게 든 다른 지위를 얻으려했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조제프 보나파르트에게 "파리에서 탈출할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뤼시엥에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좌절스러운 편지를 보냈었다. 또 부주의하게 폴린의 남편이었던 르 클레르 장군에게 불만을 표시했다가 이 사실이 그대로 나폴레옹에 보고되기도 했었다.


베르나도트는 1802년 4월 아미앵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서부지역 사령관 지위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미앵 조약이 체결된뒤, 서부지역 군은 해체되었으며 이제 베르나도트는 다른 지위를 얻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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