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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10. 2017

벨라스케스가 그린 사람들(2)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1651-1673)

벨라스케스의 그림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단연 "라스 메니나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일 것입니다. 이 그림은 어린 공주를 중심으로 공주의 주변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으로 여기에는 화가 스스로의 모습도 그려져있죠. 이 그림은 매우 뛰어난 그림으로 회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볼것은 이 그림의 의의가 아니라 이 그림의 중심인물인 어린 공주입니다.


라스 메니나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1656),프라도 박물관


이 그림의 중심 인물은 바로 에스파냐의 공주였던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4세이며 어머니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출신으로 펠리페 4세의 조카이기도 했던 마리아나입니다.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디에고벨라스케스(1656), 빈 미술사 박물관


벨라스케스는 에스파냐의 중요한 궁정화가로 이 어린 공주의 초상화를 꾸준히 그리게 됩니다. 벨라스케스가 이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게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지위 때문이었습니다. 펠리페 4세에게는 성인으로 성장한 세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와 마르가리타 테레사 그리고 후에 국왕이 되는 카를로스 2세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테레사는 숙적이었던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2세는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태어난 한참 뒤에나 태어나게 됩니다. 이때문에 오래도록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펠리페 4세의 유일한 상속녀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에스파냐를 잃지 않기 위해 상속녀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황제 레오폴드 1세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외삼촌이자 남편인 레오폴드 1세, 17세기 작품


어린시절부터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외삼촌이었던 레오폴드 1세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으며 이때문에 어린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화는 정기적으로 빈으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였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매우 뛰어난 초상화가로 특히 어린아이에 대한 표현역시 뛰어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천사같았다"고 알려진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가 연작으로 그려졌으며 이 초상화는 사람들의 사랑을 널리 받게 됩니다. 

이 세개의 그림은 모두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으로 정기적으로 빈으로 보내진 초상화들이었습니다. 첫번째 그림은 1653년 그림이고 다음은 1656년 마지막은 1659년 작품입니다. 어린 공주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볼수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왼쪽)은 1655년경 작품이고 프라도 박물관의 작품은 1660년경 작품입니다. 특히 1660년경의 작품은 벨라스케스 또는 벨라스케스의 사위였던 마소의 작품으로 추정하는데 전체적 분위기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이지만 색감등이 전혀 다르기때문에 아마도 벨라스케스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 뒤 사위였던 마소가 대신 완성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서는 1660년 사망했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는 더이상 없게 됩니다. 하지만 공주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리고 1666년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외삼촌인 황제 레오폴드 1세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결혼후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나쁘지 않은 결혼생활을 보냈습니다. 레오폴드 1세와 나이차가 많이 났었지만 둘은 공통 주제가 많았었고 이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는 부부였고 동시대 문서에서는 둘이 행복한 부부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결혼 육년동안 네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는 레오폴드 1세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양쪽 가문 모두 후계자 문제가 심각했고 이때문에 서둘러 아이들을 낳아야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부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아이들 역시 많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네 명의 아이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 밖에 없었습니다.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어린 나이에 많은 임신을 해서 이미 쇠약해진 상태에서 다섯번째 임신을 했고 결국 아이를 유산한 뒤 21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죽은뒤 그녀의 남편은 매우 슬퍼했었지만, 그에게는 후계자를 얻어야하는 의무가 있었기에 아내의 애도기간이 끝난뒤 서둘러 재혼했었습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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