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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2. 2017

벨라스케스가 그린 사람들(7)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 인판타 마리아 아나(1606-1646) 

안판타 마리아 아나 María Ana de Austria는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3세와 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언니이자 후에 프랑스의 왕비가 되는 아나와 에스파냐의 국왕이 오빠 펠리페 4세가 있었고 밑으로는 남동생들인 인판테 카를로스와 인판테 페르난도가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마리아 아나는 외가쪽인 신성로마제국쪽으로 시집갈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담이 오갔던 황제의 장남이 사망하고 나서, 좀 애매했는데 이때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아들이었던 찰스가 가톨릭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에스파냐로 와서 마리아 아나에게 구혼했었습니다. 물론 마리아 아나는 이 혼담을 거절했죠.

그리고 결국 마리아 아나는 첫번째 약혼자의 남동생이자 이제 후계자가 된 페르디난도 대공과 결혼합니다. 마이라 아나는 대리혼뒤 1629년 말에 출발하는데 1630년에 나폴리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판타 마리아 아나, 1630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라도박물관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나폴리에 머물고 있을때 그린 그림으로 마리아 아나의 오빠로 에스파냐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4세를 위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마리아 아나는 이제 결혼을 위해 에스파냐를 떠났었으며 이때문에 동생을 아꼈던 펠리페 4세를 위해 벨라스케스가 마리아 아나의 초상화를 그린것이었습니다.


1631년 마리아 아나와 페르디난트 대공과의 결혼식이 치뤄지는데 결혼식때 재미난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이미 주걱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리아 아나의 어머니 역시 주걱턱을 가지고 있었죠. 이때문에 페르디난트 대공은 이전에 받은 마리아 아나의 초상화에 대해서 믿음을 가질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부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결국 신분을 숨기고 신부를 보러가게 됩니다. 대공은 마리아 아나를 처음 보는 순간 초상화와 똑같이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렸고 곧장 마리아 아나에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고 둘은 다정하게 에스파냐어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황제 페르디난트 3세가 되는 그는 평생 아내만을 사랑했고 정부나 사생아를 두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황제 페르디난트 3세,1643년경, Jan van den Hoecke


마리아 아나는 다정하고 즐거운 성격으로 남편에게 힘이 되는 아내였는데 자주 우울해했던 남편 페르디난트 3세를 힘내게 하는 사람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가 되었으며, 주로 친정이었던 에스파냐와 오빠인 펠리페 4세와 동생인 추기경-인판테 페르난도에 대해서 매우 신경을 썼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나, 1635년경, Frans Luycx


마리아 아나와 페르디난트 3세와의 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마리아나는 외삼촌인 펠리페 4세와 결혼해서 에스파냐의 왕비가 되었고, 아들인 레오폴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가 됩니다.


가계도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가계도는 직접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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