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1793년 7월의 어느날 뉴욕 앞바다에서...
프랑스 혁명전쟁이 일어나고 나면서 프랑스는 유럽 대륙 전체에 걸쳐서 적에게 둘러쌓이게 됩니다. 특히 영국의 선전포고는 프랑스가 해전에도 적극적으로참여해야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오래도록 잉글랜드-영국 해군은 전세계 최강이었으며 영국은 이런 해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습니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인해서 숙련된 장교들이 상당수 떠나갔기에 배를 운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때문에 프랑스는 영국 전함과의 직접적 전투를 피하고 대신 영국 상선을 습격하는 형태로 공격했습니다. 이때문에 영국 해군들은 프랑스 해군을 쫓아다녀야했습니다. 이들은 여러 길목을 막는 방식으로 공격을 했는데 특히 미국의 항구 인근을 지키면서 프랑스 배들을 공격하려 고 있었습니다.
1793년 4월 "엉부스카드"라는 이름의 배를 지휘하던 프랑스 캡틴 봉파르가 이끄는 선단이 프랑스를 출발해서 미국으로 갔으며 뉴욕항에 입항합니다. 그리고 이 정보는 미국에서 프랑스 선단을 막고 있던 영국 함대에 알려지게 됩니다. 영국의 해군 장교였던 캡틴 조지 코트니는 영국 선단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프랑스 프리깃이 머물고 있는 뉴욕항을 정찰하라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캡틴 코트니는 대담하게도 직접 뉴욕항에 들어갔으며 프랑스 배로 가장했으며 도선사가 왔을때 프랑스어가 가능한 선원들이 프랑스어로 떠들게 했었습니다.
캡틴 봉파르는 캡틴 코트니의 배인 "HMS 보스턴"이 입항했을때부터 이상하게 여겼으며 그는 자신의 장교를 보내서 배를 확인하게 합니다. 그 프랑스 장교는 배에 올라서 프랑스 배로 확인했지만 결국 캡틴 코트니는 그를 억류하고 정체를 드러냅니다.
캠틴 코트니는 캡틴 봉파르에게 인질을 붙잡고 있으니 중립지역에서 결판을 내자는 메세지를 도선사에게 들려보냅니다. 그런데 도선사는 캡틴 봉파르를 찾을수 없었고 결국 뉴욕의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는 곳에 이 메세지를 남기게 되죠. 결국 이 소식은 전 뉴욕에 퍼져나갔으며 캡틴 봉파르의 귀에도 들어오게 됩니다.
우여곡절끝에 1793년 7월 30일 새벽 3시에 HMS 보스턴과 엉부스카드는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싸우기로 한 배인지 확인을 한 끝에 새벽 5시에 전투가 시작되죠.
이 전투에 대해서 사실 전 뉴욕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 역시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나갔고 이 전투를 보기 위해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해안으로 몰려갔었다고 합니다.
....불구경과 싸움구경은 재미있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이야기인듯합니다.
더하기
이 전투는 영국측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 HMS보스턴은 엉부스카드보다 작고 낡은 배였으며 대포도 그리 많이 없었습니다 . 전투 결과 HMS보스턴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배의 캡틴과 해병대 장교가 사망하고 다른 장교 둘이 심각하게 부상당했는데 한명은 심지어 시력마저 잃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는 나포되지 않고 공해상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특히 그나마 유일하게 지휘할수 있었던 장교였던 존 에드워드는 메인돛마저 손상된 상황에서 바람을 이용해서 배의 방향을 바꾸어서 공해상으로 도망쳤으며 간신히 영국령이었던 캐나다로 돌아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HMS 보스턴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났지만 새로 만든 배였으며 심지어 HMS보스턴보다 크고 대포도 더 많았던 엉부스카드 역시 엄청나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운용하는 해군 장교들의 기술에 따라 화력이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듯합니다. 아마 이때문에 캡틴 조지 코트니가 엉부스카드와의 전투를 해볼만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