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
동화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사실 신분제가 극명했던 중세-근대 유럽 사회에서는 있을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과 이어지는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사회 전반을 흔들었으며 아주 확고했던 유럽의 신분제에도 동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동등한 결혼"이라는 개념에서 좀더 벗어나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동등한 결혼이라는 것은 신분이 같은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왕족은 왕족과 결혼하고 귀족은 귀족과 결혼하는 그런 상황을 의미합니다. 만약 왕족과 귀족이 결혼한다면 왕족 입장에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기에 "동등한 결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를 "귀천상혼"이라고 부르고, 상속권을 박탈하는 등 복잡한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전 시대는 귀천상혼이 훨씬 더 적었고 대신 정부를 두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런 귀천상혼을 하는 경우는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하는 것일수도 있었기에 19세기에도 왕족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조건 덕분에 몇몇 이들의 이야기는 매우 낭만적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할 이야기는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중 하나인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 이야기입니다.
헤센의 알렉산더는 헤센 대공의 아들로 그의 누이동생인 마리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가 됩니다. 알렉산더는 마리가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되었을때 그녀를 따라 러시아로 갑니다. 나름 뛰어난 군인이었던 알렉산더에 대해서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그를 마음에 들어했고, 심지어 그의 조카들중 한명을 그에게 시집보낼까 고려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돌정도였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이미 러시아 황태자비의 오빠이자 장래 황제의 외삼촌으로 러시아 궁정에서 어느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러시아 여대공과 결혼한다면 그는 러시아에서 완전히 자리잡을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알렉산더는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율리아 하우케로 여동생인 황태자비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시녀이기도 했었습니다. 율리아 하우케는 백작의 딸이긴 했지만 그녀는 사실상 평민출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리아 하우케의 아버지인 모리츠 하우케는 원래 독일계 폴란드인으로 나폴레옹 전쟁당시 기회를 잡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군의 장군이 되었으며 관례대로 "백작"지위를 얻게 되었죠. 그는 폴란드 출신이긴했지만 러시아에 충성한 인물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의 형인 콘스탄틴 대공이 폴란드 총독으로 머무르고 있을때,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에서 벗어나기 위한 봉기가 일어납니다. 이때 하우케 장군은 콘스탄틴 대공을 보호하다가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우케 장군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사망하죠.
폴란드가 진압된 뒤,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직접 폴란드로 왔으며 러시아에 충성을 다했던 하우케 장군 가족들을 우대합니다. 아들들은 러시아 군 장교가 되게 했으며 딸들은 러시아 고위 귀족 딸들만 일할수 있었던 황후와 황태자비의 시녀로 일할수 있게 해줬었습니다. 그래서 율리아 하우케의 언니는 황후의 시녀가 되었으며 율리아 하우케는 황태자비의 시녀로 일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율리아 하우케의 신분은 헤센의 알렉산더와 결혼할수 있을 만큼 높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니콜라이 1세는 귀천상혼을 극히 싫어했었기에 그녀와의 공식적 관계는 러시아에서는 엄두를 낼수 없었습니다. 헤센의 알렉산더는 출세와 사랑사이에서 방황했고 처음에는 그는 다른 많은 이들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하고 자신의 지위를 택하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헤센의 알렉산더는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는 율리아 하우케와 야반도주해서 러시아 궁정에서 멀리 떨어진곳에서 그녀와 결혼하죠.
이 상황은 당연히 니콜라이 1세의 진노를 샀으며 그는 바로 러시아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러시아 군에서 경력을 쌓고 있던 알렉산더는 러시아에서 쫓겨난 것은 실직한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이제 아내가 된 율리아 하우케와 함께 고향인 헤센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형이자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드비히 3세는 동생의 아내에게 "바텐베르크 백작부인(여백작)"지위를 부여하면서 둘의 결혼이 비록 귀천상혼이지만 정식 결혼임을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율리아 하우케는 후에 "베텐베르크 공비Princess of Battenberg"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물론 그녀의 지위는 헤센 대공이 내려준 지위로 그녀가 헤센 대공가문의 일원과 결혼한 여성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귀천상혼한 가문을 낮게보던 유럽왕족들에게 그녀의 칭호는 단순히 칭호일뿐 그녀나 그녀의 자녀들에 대해서 낮게 보는것은 여전했습니다.
이후 헤센의 바텐베르크는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장군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그냥 조용히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 역시 처음에는 아마도 그냥 조용히 헤센 대공가문에 기대어서 살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가문은 화려한 결혼관계때문에 유럽 역사에 두드러지는 가문중 하나가 됩니다. 유럽에서 제일 잘생긴 가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미남들로 알려졌던 네아들들은 모두 유명해지게 됩니다. 장남인 루드비히는 평생 영국 해군으로 살았으며 빅토리아 여왕이 제일 사랑하는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결혼했죠. 그의 딸중 한명은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고 그의 외손자가 바로 현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기도 합니다. 차남인 알렉산더는 러시아와의 관계 덕분에 불가리아의 통치자가 됩니다. 물로 그는 러시아에 의해서 강제로 퇴위당하지만 불가리아에서 좋은 군주였던 인물로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아들인 하인리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와 결혼했으며, 하인리히의 딸인 에나는 에스파냐의 왕비로 현 에스파냐 국왕은 에나의 증손자이기도 합니다. 막내아들인 프란츠 요제프는 평생 학자로 살았습니다만 그의 아내는 유럽에서 화려한 혼맥으로 유명했던 몬테네그로 공주들중 한명이었던 몬테네그로의 안나였죠.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 이야기는 이런 자녀들의 화려한 결혼관계와 정치적 입지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낭만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