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May 13. 2019

현실의 신데렐라 이야기 :두번째

가벼운 역사이야기 :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와 호엔슈타인 백작부인 

뷔르템베르크 가문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독일의 통치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뷔르템베르크 백작, 뷔르템베르크 공작을 거쳐서 결국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뷔르템베르크 왕국을 성립하게 되죠.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초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1세에게는 많은 형제들이 있었고 이 형제들은 많은 분가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 역시 이런 뷔르템베르크 국왕의 조카중 한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알렉산더의 고모는 러시아의 파벨 1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로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 뷔르템베르크 국왕의 조카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는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어려서부터 군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처음에는 뷔르템베르크 군대에 들어갔었지만 후에는 오스트리아 군에 들어가 복무를 하게 되죠.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에서 복무할때 그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클라우딘 레데이 폰 키스-레데(Claudine Rhédey von Kis-Rhéde)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그녀는 헝가리의 오래된 귀족가문 출신이었으며 그녀의 조상은 헝가리의 국왕들과도 혈연적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클라우딘에게 반했고 사랑에 빠졌지만 클라우딘은 통치가문 출신이 아니었기에 알렉산더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결국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상속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클라우딘 레데이 폰 키스-레데


알렉산더는 당연히 사랑하는 여성과의 결혼을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알렉산더와 결혼한 클라우딘에게 "호엔베르크 백작부인(여백작) " 지위를 부여했죠. 이런 결혼은 대부분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기에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알렉산더와 클라우딘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행복하게 끝난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비극으로 끝나게 되죠.


호엔슈타인 백작부인


결혼한지 삼년만에 연년생으로 세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부부는 이 세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41년에 비극이 일어나게 되죠. 그녀는 사고로 사망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남편의 기병대 행렬을 보기 위해서 말을 타고 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그 말에 밟혀서 죽었다고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마차사고로 사망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결혼 6년만에 떠나보낸 알렉산더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 결과 그의 정신상태는 매우 불안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생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뷔르템베르크의 알렉산더


사실 이런 귀천상혼한 가문의 이야기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왕가에서는 귀천상혼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봤고 이에 대해서 대중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알렉산더와 호엔베르크 백작부인의 후손들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와 호엔베르크 백작부인의 장남인 프란츠는 매우 잘생긴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었기에 왕족들과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낮았고, 귀족들과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너무 높은 상황이었죠. 그런 그에게 높은 신분의 여성과의 혼담이 들어옵니다. 바로 영국의 캠브리지 공작의 딸이었던 메리 아델라이드였습니다. 


호엔베르크의 프란츠,후에 테크 공작 프란츠,1860년대


메리 애들라이드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자 하노버 국왕의 조카였으며 또한 그녀의 언니인 아우구스타는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의 후계자와 결혼하기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메리 애들라이드는 30살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팻메리"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뚱뚱했기에 유럽의 왕족들이 그녀의 외모에 대해서 꺼렸으며 또한 그런 외모를 상쇄할만큼의 재산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캠브리지의 메리 애들라이드,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 1860년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인 메리 애들라이드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서 그녀에게 적당한 혼처를 찾아주려했었고 이에 알렉산더와 호엔베르크 백작부인의 장남인 프란츠가 메리의 남편으로 선택된것이었습니다. 부부는 영국에서 살았기에 아이들도 모두 영국인으로 성장했죠. 그리고 프란츠와 팻메리의 딸인 메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조지 5세와 결혼해서 영국의 왕비가 됩니다. 이런 가족 관계 덕분에 알렉산더와 호엔베르크 백작부인의 이야기 역시 잘 알려지게 된것입니다.


조지 5세와 그의 아내인 테크의 메리의 결혼식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의 신데렐라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