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넬리 유럽에서 명성을 얻다.
파리넬리는 1717년 카스트라토로써 교육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의 선생님이 된 인물은 바로 포르포라였습니다. 파리넬리는 포르포라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콘세르바토리 디 산 오노프리오에 들어간것이 아니라 포르포라의 개인지도를 받게 됩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이런식의 개인지도가 흔했었던듯합니다.
포르포라의 훈련법은 매우 엄격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런 엄격한 훈련방법은 결국 뛰어난 카스트라토들을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스트라토들은 단순히 거세만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혹독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폐활량을 엄청나게 키웠으며 또한 음역대 역시 넓히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카스트라토의 신화가 생겨나게 된것이었습니다.그리고 아마도 파리넬리 역시 이런 엄격한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리넬리가 처음으로 데뷔한것은 15살인 1720년이었습니다. 토렐라 공의 결혼식을 위해 포르포라는 공연을 준비했으며 "안겔리카 이 메도로"라는 작품을 작곡해서 공연했는데 이 공연에서 파리넬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결혼식 공연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파리넬리의 공연을 봤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파리넬리는 극의 대본가였던 젊은 시인이었던 피에트로 트라파씨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메타스타시오"라는 이름으로 훗날 알려지는 인물이었죠. 파리넬리와 메타스타시오는 이 공연에서 만난뒤 평생 친분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포르포라는 재능있는 자신의 제자를 좀더 감춰둡니다. 그는 파리넬리를 자신의 오페라에 나오게 하므로써 제자의 성공은 물론 자신의 성공도 노리고 있었죠. 그리고 1721년 12월 드디어 파리넬리는 공식적으로 대중앞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파리넬리는 나폴리가 아니라 로마에서 데뷔하게 되죠. 로마의 Teatro delle Dame는 포르포라와 계약을 맺었으며 1721년 12월 포르포라는 이곳에서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파리넬리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대중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죠. 파리넬리의 노래를 들은 관중들은 "성가대 소년들과 같이 맑고 깊은 음색과 여성보다더 높고 넓은 음역대의 노래를 매우 힘있게 노래 불렀다"라고 언급되는 그의 노래에 열광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다음해인 1722년 12월 포르포라와 그의 제자인 파리넬리가 다시 로마로 와서 공연할수 있게 했었죠.
1723년 포르포라와 파리넬리는 다시 나폴리로 돌아옵니다. 나폴리에서 돌아온 포르포라는 몬테밀레토 공의 결혼식을 위해 곡을 작곡했으며 파리넬리는 이것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후 파리넬리는 포르포라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1724년 파리넬리는 이제 선생님 포르포라없이 로마의 극장에 섭외받아서 노래를 부르러 갔으며 더 중요한것은 포르포라의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빈치의 오페라에 출연하므로써 그가 선생님인 포르포라와는 독자적인 경력을 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죠. 하지만 파리넬리는 다시 나폴리로 돌아와서 포르포라의 오페라에 출연합니다. 그리고 나서 둘은 함께 황제의 궁정이 있는 빈으로 가죠. 빈에서 파리넬리는 황제와 황후 알현했으며 둘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것이라고 합니다.
이 공연뒤 파리넬리는 포르포라를 떠나 나폴리로 돌아왔으며 나폴리에서 노래를 계속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파르마와 밀라노 로마,볼로냐등에서도 공연을 했으며 그의 목소리에 청중들은 엄청나게 열광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1727년 여름 볼로냐에 갔을때 그는 그곳에서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는 시치니오 페폴리 백작을 만났으며 이들은 평생 서신을 교환하면서 우정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후 파리넬리는 뮌헨의 궁정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빈으로 다시 가서 황제와 황후앞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미 수퍼스타였던 파리넬리는 당대 최고의음악도시중 하나였던 베네치아로 갔으며 베네치아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 성공은 영국에 있던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헨델은 1730년 파리넬리를 자신의 오페라단에 섭외하려고 시도할정도였다고 합니다.(하지만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죠.)
이런 성공을 통해서 파리넬리는 이탈리아는 물론 빈의 황실에도 초청받는 음악가가 됩니다. 황제인 카를 6세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파리넬리는 황제에게서 엄청나게 뜻깊은 조언을 얻게 됩니다.사적인 공연에서 황제앞에서 칼다라의 노래를 불렀던 파리넬리에게 황제는 "어려운 기술로 청중들을 놀라게하기보다는 그들을 기쁘게 하는데 더 노력하라"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청중의 영혼을 사로잡을수 있는 아름다움에 치중하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파리넬리는 이런 황제의 조언을 가슴깊이 새겼으며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음악경력을 가져야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파리넬리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으며 여전히 베네치아등에서 최고의 오페라가수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스승인 포르포라의 부름을 받고 1734년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1.필립 자루스키 포르포라 아리아 모음집 :"Farinelli:Porpara arias"(2013)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