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영광을 누리다.
1737년 런던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파리넬리는 더이상 대중을 위한 무대에 서지 않게 됩니다. 1737년 7월 파리에서 파리넬리는 친구였던 페폴리 백작에게 이제 자신은 에스파냐로 가고 있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때 파리넬리는 잠시 베르사유로 초대받게 됩니다. 프랑스의 국왕인 루이 15세를 위해 파리넬리는 노래를 불렀으며 국왕은 이에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자신의 초상화를 선물로 줬다고 합니다.
파리넬리가 에스파냐로 오게 된것은 당시 에스파냐 국왕이었던 펠리페 5세와 연관이 있습니다. 펠리페 5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트 파르네세(파르마 공작령의 상속녀)는 남편의 우울증이 음악치료로 나아질수 있다고 여겼으며 남편의 치료를 위해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파리넬리를 궁정으로 초대한것이었죠.1737년 8월 파리넬리는 궁정에서 지위를 얻었으며 이제 더이상 대중을 위한 무대에는 서지 않게 됩니다.
에스파냐 왕실에서 파리넬리는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는 밤마다 국왕 부부를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열어서 둘을 위해 노래를 불러줬으며 국왕 부부 뿐만 아니라 다른 왕실 가족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거나 작은 음악공연을 열어주기도 했었습니다. 1738년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에스파냐 왕실 극장에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펠리페 5세가 죽고 그의 아들인 페르난도 6세가 즉위하면서 파리넬리의 영향력은 한층강화됩니다. 국왕 부부는 모두 음악을 사랑했었고 자신들과 가까운 음악가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파리넬리는 왕비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고, 국왕이 하프시코드로 이들의 노래에 반주를 하기도 했었죠.이런 상황은 파리넬리가 에스파냐 궁정에서 음악 책임자가 되게 했으며 그는 국왕으로부터 귀족지위를 부여받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1759년 페르난도 6세의 동생인 카를로스 3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카를로스 3세는 음악에 관심이 없었죠. 게다가 카를로스 3세의 모후였던 엘리자베트 파르네세는 남편이 죽은뒤 궁정을 떠나야했던 자신을 따라가지 않고, 의붓아들의 궁정에 그대로 남았던 파리넬리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상황은 파리넬리가 더이상 에스파냐 궁정에 머물수 없게 만들었을듯합니다. 파리넬리는 엄청난 연금을 받긴했지만 결국 궁정을 떠나야했으며 볼로냐로 돌아가서 조용한 삶을 살게됩니다.
돈과 명예를 모두 가졌던 파리넬리에게 끊임없이 손님들이 찾아왔으며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한번씩은 그의 집에 방문할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리넬리는 친구들이나 가족들보다 오래살았으며 이때문에 고립감을 느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든후에도 친구들을 사겼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과 교류를 했었다고 합니다.
1782년 9월 파리넬리는 사망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칼라트라바 훈장의 맨틀에 덮여서 볼로냐에 있는 성카푸친 성당에 매장됩니다. 그의 재산은 조카에게 물려졌는데 파리넬리의 물건들중 그의 편지는 볼로냐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때 파리넬리의 묘 역시 파괴되었지만 그의 상속자의 손녀는 다시 파리넬리의 묘를 볼로냐의 한 수도원으로 이장했었습니다.
파리넬리는 당대의 다른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노래만 부르지 않고 그 자신도 스스로 노래들을 작곡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