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임신으로 의심받은 한 귀부인의 대답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은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이었던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부인인 바덴의 체칠리의 고명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여러 남자형제들중 유일한 딸이었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자형제들 모두도 그녀를 좋아했는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인 체칠리의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대공과 결혼한뒤 "올가 표도로브나"라고 불린 체칠리는 매우 시니컬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녀들에게 엄격하기만했던 인물이었고 자녀들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일은 감히 할수도 없게 했었습니다. 당대 관념에서 자녀들은 어머니가 키우는 것이었고 이때문에 어머니가 애정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유일한 여자형제였던 아나스타샤에게 모두가 매달리게 된것이었죠. 아나스타샤는 당대 일반적인 교육방법에 따라 평소에 남자형제들과 떨어져 살았고 일요일에만 만났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모두들 아나스타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죠.
사실 아나스타샤에게 애정을 가질만했던 것이 아나스타샤는 매우 교육을 잘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지가 강한데다가 매우 낙천적 성격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인물이었기에 오빠와 남동생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었죠.
물론 아나스타샤도 강압적인 어머니의 뜻을 피할수는 없었고 그녀는 18살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의 후계자와 결혼을 합니다. 아나스타샤의 어머니는 딸이 통치 군주가 될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만족스러워했었지만 아나스타샤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비록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남편감은 너무나 병약했었기에 아나스타샤가 꿈꾸던 왕자님이 아니었던 것이죠. 어쨌든 아나스타샤는 이 결혼을 거부할수 없었고 결혼을 했으며 병약한 남편을 돌보게 되죠. 하지만 결혼 18년만에 남편이 죽으면서 36살의 아나스타샤는 과부가 됩니다.
과부가 된후 아나스타샤는 궁정에서 은퇴해서 파리와 칸과 니스 그리고 이탈리아와 친정인 러시아등을 오가면서 살았으며 몬테카를로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개인재산이 많았기에 이런 생활을 할수 있었죠.
이렇게 살던 1902년 아나스타샤는 배가 불러오게 됩니다. 모두들 그녀가 임신한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아나스타샤는 남편이 죽은 뒤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팔토프라는 인물을 개인 비서로 고용했었는데 그와 아나스타샤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임신한것이 아니라 종양때문에 배가 나오는 것이라 주장했었죠. 그리고 1902년 12월에 수두가 걸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접촉을 피하게 되죠.
사실 그녀는 종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두에 걸린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두의 의심대로 그녀는 임신한 것이고 1902년 12월 수두를 핑계로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있는 동안 아이를 낳았던 것입니다.
뭐 어쨌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더이상 부인할수 없었는데, 당대 많은 사생아를 낳은 귀부인들과 달리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고 키웠다고 하네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