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된 산초 1세의 딸들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 :(8)테레사,마팔다,베렝가리아

by 엘아라

산초 1세는 아라곤과의 동맹을 위해 아라곤의 인판타였던 둘스(Dulce)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는 열한명 이상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이중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아홉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중 딸들은 여섯이었죠. 그중 셋이 왕비가 되는데 테레사와 마팔다는 이베리아 왕가로 시집가지만 베렝가리아는 좀 더 먼 곳으로 시집갑니다.


400px-D._Sancho_I_-_Compendio_de_cr%C3%B3nicas_de_reyes_%28Biblioteca_Nacional_de_Espa%C3%B1a%29.png 산초1세


산초 1세의 첫째 딸이었던 테레사는 사촌이었던 레온의 국왕 알폰소 9세와 결혼합니다. 아마도 이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을 테지만, 알폰소 9세의 어머니인 고모 우라카처럼 근친결혼이라는 이유로 교회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 결혼 무효화 되죠. 결혼이 무효화 된뒤 테레사는 고향인 포르투갈로 돌아왔으며 수녀원에서 지내게 됩니다. 알폰소 9세와 테레사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죽을때 두명의 딸만 생존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알폰소 9세는 테레사와 헤어진뒤 카스티야의 여왕인 베렝가리아와 결혼했었는데 문제는 베렝가리아 역시 알폰소 9세와 친척관계였으며 결국 이 결혼 역시 무효화됩니다. 덕분에 테레사의 아이들과 베렝가리아의 아이들 사이에 왕위 계승문제로 잠시 복잡한 솽황이 벌어집니다만, 결국 남성이었던 베렝가리아의 아들인 페르난도 3세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했었습니다.


800px-D._Teresa_de_Portugal%2C_Rainha_de_Le%C3%A3o_-_The_Portuguese_Genealogy_%28Genealogia_dos_Reis_de_Portugal%29.png 포르투갈의 테레사, 레온의 왕비


산초 1세의 딸이었던 마팔다는 역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카스티야의 국왕인 엔리케 1세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엔리케는 겨우 10살 정도였으며 마팔다보다 10살정도 어렸던 것이죠. 게다가 정치적 문제까지 얽히게 되면서 마팔다와 엔리케 1세의 결혼은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효가 됩니다. 결혼이 무효가 된 뒤 마팔다 역시 포르투갈로 돌아왔으며 역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치적 이유때문에 엔리케 1세는 결혼이 무효화 된 뒤에도 역시 포르투갈과의 연결고리로 마팔다의 조카이자 레온의 알폰소 9세의 딸이었던 산차와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만 둘은 역시 친척관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이 성사되기전 엔리케 1세가 사망했기에 더이상 결혼무효는 없었습니다. 마팔다는 언니인 테레사와 함께 1705년 시복됩니다.


498px-D._Mafalda_de_Portugal%2C_Rainha_de_Castela_-_The_Portuguese_Genealogy_%28Genealogia_dos_Reis_de_Portugal%29.png 포르투갈의 마팔다, 카스티야의 왕비


산초 1세의 막내 딸이었던 베렝가리아는 언니들과 달리 먼곳으로 시집갔으며 이때문에 언니들처럼 결혼무효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빠로 플랑드르의 상속녀와 결혼했던 잔과결혼했던 페르난도를 통해서 프랑스 궁정에 갔으며, 이때 프랑스 왕비였던 잉에보르그는 덴마크 공주였으며 아내를 잃었던 잉에보르그의 오빠 발데마르 2세는 플랑드르와 좋은 관계를 맺길 원했기에 결국 플랑드르 백작의 여동생인 베렝가리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남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란 베렝가리아는 북쪽의 덴마크에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닮아 매우 아름다웠지만 발데마르 2세의 첫번째 아내로 전형적인 북유럽 미녀였던 보헤미아의 다우마와 다른 남쪽 지방의 짙은 눈동자에 머리색깔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아마 외모가 벌써부터 사람들에게 낯설었으며 또한 첫번째 왕비가 워낙 인기있는 여성이었기에 베렝가리아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죠.

베렝가리아는 죽기전 이미 세 아들들을 낳았으며 세 아들들은 아버지와 형들의 뒤를 이어 모두 덴마크의 국왕이 됩니다. 하지만 발데마르 2세에게 네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들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게 된것은 아마도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베렝가리아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평가가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세 아들들이 왕국을 얻기 위해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024px-D._Bereng%C3%A1ria_de_Portugal%2C_Rainha_Consorte_da_Dinamarca_-_The_Portuguese_Genealogy_%28Genealogia_dos_Reis_de_Portugal%29.png 포르투갈의 베렝가리아, 덴마크의 왕비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금은 나라를 정비하고 협력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