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악셀 옥센셰르나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악셀 옥센셰르나라는 인물은 스웨덴 역사상 중요한 인물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가장 신임한 신하였으며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그를 믿고 내정을 맡겼기에 사방으로 밀려드는 스웨덴의 적들에 대항하는 전투를 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악셀 옥센셰르나 역시 구스타프 2세 아돌프를 신뢰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매료된 사람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군주가 원한대로 소임을 충실히 시행했었으며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악셀 옥센셰르나는 죽는 순간에는 매우 큰 회한과 후회를 남겼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이 주동적으로 군주로 내세웠던 크리스티나 여왕의 퇴위를 막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스스로 국정을 가르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여섯살에 즉위한 여왕은 아버지가 구성한 섭정단과 가정교사, 양육자들에게 훈육을 받으면서 성장했었죠. 어려서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수업을 받으면서 살았고 이런 상황은 크리스티나가 "학구적"으로 변신하는데 큰 도움을 줬었습니다. 물론 크리스티나 스스로는 "난 이것저것 너무 많이 배워서 제대로 배운것이 없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악셀 옥센셰르나는 여왕이 친정을 할 나이가 되자 자신의 뜻과 다른 정치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당황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그의 군주였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줬었지만 자신이 키운것이나 다름없는 크리스티나는 대놓고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었습니다.
게다가 모두가 여왕이 하루빨리 결혼해서 후계자를 낳길 바랬지만 여왕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귀족들이 반대하는 인물이었던 사촌이자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이었던 칼 구스타프를 후계자로 내세우기까지 했죠. 악셀 옥센셰르나는 여왕의 결혼에 대해서 매우 걱정했으며 여러 후보를 추천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아들까지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무나 하나 좀 데리고 결혼해라..라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는 아들을 추천한 악셀 옥센셰르나를 보면서 웃으면서 "언젠가 결혼할지도 모르죠"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퇴위하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이 모두 개종을 말렸지만 이를 거부했고 퇴위하지말라고 했지만 결국 퇴위했습니다. 이것은 악셀 옥센셰르나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죠.
크리스티나가 퇴위한 두달후쯤 악셀 옥센셰르나는 사망했으며 그의 마지막 말은 크리스티나에 대한 것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에게 여왕의 퇴위는 어쩌면 그의 위대한 군주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사람이 자신의 생전에 왕위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서 매우 착찹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악셀 옥센셰르나는 스웨덴 역사상 뛰어난 정치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퀸 메이커로써는 실패한 인물일 것이고 스스로가 아마 이것을 가장 잘 알았을 것입니다.
더하기
하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악셀 옥센셰르나는 크리스티나의 신하가 아니라 선왕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신하였습니다. 크리스티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하가 아니라 아버지의 신하와 일을 해야하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죠.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중재라도 할텐데 그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이세상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