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느힐드와 프레데군드...세번째

숙적이 된 메로빙거 왕가의두 왕비들....갈등의 심화

by 엘아라

브루느힐드는 자매인 갈스윈다의 죽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분노했으며 남편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갈등을 빚고 있던 시그베르와 킬페리크의 분쟁이 확산되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사실 메로빙거 왕가에서 형제들간의 갈등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런 사건이 아니라도 형제들간에는 결국 전쟁을 치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좀더 깊은 갈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킬페리크의 공격을 시작으로 시그베르와 킬페리크의 분쟁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우세한 사람이 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로 시그베르쪽이었죠. 그는 동생의 영지를 차례로 정복해나갔고 킬페리크는 서둘러 도망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곧 다르게 바뀝니다. 바로 시그베르가 암살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암살에 관여한 사람은 바로 프레데군드였다고 합니다. 시그베르의 암살이후 전쟁상황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브루느힐드는 킬페리크쪽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녀의 미성년 아들인 킬데베르 2세(킬데베르투스 2세)는 충성스러운 신하에 의해서 안전한 곳으로 겨우 피신할수 있었죠.


시그베르 1세의암살


아마 브루느힐드는 자매는 물론 남편까지 살해한 킬페리크와 프레데군드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잡혀있는동안 킬페리크 1세 가족의 내분으르 이용하려들죠. 프레데군드는 남편의 아이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두지 않으려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킬페리크의 뒤를 잇게하려했고 이것은 킬페리크의 자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을것입니다. 그리고 브루느힐드는 이 상황을 이용하게 되죠. 브루느힐드는 킬페리크의 아들중 한명과 "결혼"을 했고 이렇게 킬페리크의 아들인 메로비크는 자신의 권력을 마련하려하죠. 하지만 킬페리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교회법상으로도 이 결혼은 무효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상황은 평화롭게 해결되어서 브루느힐드의 결혼은 무효가 되고 대신 이들에 대해서 처벌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죠.


그리고 킬페리크 1세의 이복형이자 시그베르1세의 친형이었던 군트람(군트람누스)가 나서서 중재를 하게 됩니다. 그는 조카이자 시그베르 1세의 아들인 킬데베르의 안전을 보장해줬었죠. 브루느힐드는 이제 안전이 보장된 아들 킬데베르의 섭정으로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과 자매를 죽인 킬페리크와 프레데군드에 대한 증오를 아들에게 물려줬을 것이며 역시 그녀의 아들인 킬데베르 역시 이를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브루느힐드가 아들과 나라를 재건하는데 골몰하는 동안, 프레데군드는 이제 킬페리크의 궁정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전처와 그 아이들을 모두 없애버릴 궁리를 했었죠. 이들이 사라져야 자신의 자녀들이 왕국을 이어받게 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살아남았던 킬페리크의 아이들은 의붓어머니인 프레데군드의 음모로 살해당하거나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속세와인연을 끊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레데군드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했고 이것은 그녀에게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막내아이를 낳았을 무렵 그녀의 삶 역시 다시 한번 바뀌게 됩니다.


킬페리크 1세와 프레데군드


584년 프레데군드의 남편인 킬페리크가 사냥을 다녀오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됩니다. 그 역시 암살당한것이었죠. 암살을 사주한 인물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브루느힐드쪽이라고 추정할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것이었죠.


킬페리크 1세의 암살


10여년전 브루느힐드가 직면했던 상황을 프레데군드도 똑같이 직면하게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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