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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16. 2015

세번째 부인이라도 좋아!

자이푸르의 마하라니 가야트리 데비 이야기

후에 자이푸르의 마하라니 가야트리 데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는 쿠츠베하르의 가야트리 데비 공주는 1919년 쿠츠베하르의 군주였던 지텐드라 나라얀과 그의 부인인 인디라 데비(바로다 왕국의 공주인 인디라 라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인디라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으로 이미 약혼자가 있었지만 쿠츠베하르 군주의 동생과 사랑에 빠져서 단독으로 혼담을 깨고 그와 결혼해서 인도 왕족 사회에서 큰 스캔들을 일으켰었죠.


가야트리 데비는 이런 부모의 다섯 자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 시절 사망했으며 어머니인 인디라 데비가 섭정으로 쿠츠베하르를 통치했었죠. 하지만 쿠츠베하르는 오래도록 영국의 보호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영국의 총독이 정치에 상당 부분 관여했습니다. 또 왕족들은 거의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많은 서양식 문물에 익숙해있었죠.  이런 상황은 가야트리 데비가 인도의 전통적 관습 중 하나인 뿌르다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계기가 됩니다. 뿌르다는 여성이 가까운 친족과 남편 외에 다른 남성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관습으로 이것은 특히 라자스탄 지방에서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지켜져 오던 풍습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3세기 칫토르가르의 라니였던 파드미니의 이야기를 보면 아름다웠던 그녀 역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우연히  거울에 비친 라니의 모습을 본 술탄이 그녀에게 반해서 칫토르가르를 쳐들어왔다는 설화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어쨌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지만 가야트리 데비는 쿠츠베하르 군주의 여동생이었으며 많은 인도 왕족들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개방적이었던 가문의 풍습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 스위스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었습니다.


  

어린시절의 가야트리 데비



가야트리 데비는 12살 때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인도 사교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여성이었기에 많은 왕족들과 교류를 했었습니다.  또한 가야트리 데비의 오빠들은 당시 많은 인도  왕족들처럼 승마와 폴로 경기에 열광하고 있었죠. 이 때문에 자이푸르의 군주이자 뛰어난 폴로 선수였던 만싱 2세는 가야트리 데비의 가족을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자이푸르의 마하라자였던 만싱 2세는 영국에서 교육받았으며 영국군 장교였고 또한 뛰어난 폴로 선수였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부터 폴로에 열광했던 만싱 2세는 인도로 돌아온 뒤 친척과 친구들로 구성된 폴로팀을 만들었는데 이 폴로팀은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었다고 합니다.

7살이 더 많았던 만싱 2세를 처음 봤을 때 가야트리 데비는 그를 매우 동경하게 됩니다. 매우 잘생겼으며 자이푸르 같은 유력한 왕국의 군주였고 뛰어난 폴로 선수에 모험을 즐기는 멋진 남자였기 때문이었죠. 열두 살의 어린 소녀에게는 그는 아이돌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 아이돌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죠.



가야트리 데비가 14살이 되던 해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자이푸르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만 싱의 두 아내와 그의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 가야트리 데비는 만싱 2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동경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이런이런...)

그런데 이때쯤 만싱 역시 이 아름답게 성장할 소녀를 눈여겨 봤으며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에게 딸이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췄다고 합니다.(이런 나쁜 X2)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무시합니다만 이 이야기를 들은 가야트리 데비의 마음은 완전히 만싱에게로 기울게 됩니다.

아마도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바람둥이인 자이푸르의 군주가 괜히 자신의 어린 딸을 입에 담아본 것이라고 여겼던듯합니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가 오간 이후에도 만싱은 여전히 가야트리 데비의 가족과 만났고 가야트리 데비는 이 멋진 유부남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으며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되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가야트리 데비는 교육을 위해 스위스로 가게 됐는데 가야트리 데비의 언니가 사고를 치게 됩니다. 결혼을  반대당할 것을 우려해서 그냥 사랑하는 남자와 등기소에서 결혼해버린 것이었죠. 결국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가야트리 데비의 가족들은 영국으로 갔는데 당시 영국에 있던 만 싱은 가야트리 데비와 만나서 장래를 진지하게 약속합니다. 가야트리 데비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길 주저하다가 결국 자신이 이야기한 것으로 안 만 싱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먼저 말하게 만들어서 일을 좀 복잡하게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가야트리 데비는 자신의 결정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게 되죠.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작은딸 마저 사고 칠 것을 걱정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직 어리므로 결혼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야트리 데비는 스위스의 기숙 학교를 다녔는데 만싱은 그 학교에 자신이 가야트리 데비의 사촌오빠라고 속이고 가야트리 데비를 자주 만나러 갔었습니다.


만싱2세, 자이푸르의 군주



스위스에서 교육이 끝난 뒤 가야트리 데비는 영국에 있는 비서학교에 등록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만 싱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가야트리 데비가 인도로 돌아온 뒤 다른 왕족과 선봐서 결혼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미혼인 사윗감을 원했으며(... 당연한 거지!!!! 누가 세 번째 왕비로 딸을 보내고 싶겠냐고요..--;;;) 딸이 쿠츠베하르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자이푸르로 시집 가서 적응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가야트리 데비는 신분을 말하지 않고 비서학교에 들어가서 타이핑 속기 회계 등을 공부했었는데 이것은 다른 인도 공주들이라면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죠.


결국 이런 노력 끝에 가야트리 데비는 1940년 자이푸르의 군주였던 만 싱 2세의 세 번째 아내가 됩니다. 사실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딸의 결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그 직후 만 싱 2세가 비행기 사고로 거의 죽다 살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겪고난뒤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딸과 만 싱 2세가 바로 결혼하도록 허락해줬던 것이었죠.


뭐 이렇게 결혼해서 남편이 사망할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네요.



가야트리 데비와 만싱 2세



세실 비튼이 찍은 가야트리 데비의 사진, 당시 보그지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10명에 들어갔습니다.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구요.


사진출처

위키 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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