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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17. 2015

이모는 내 아랫 동서!

헤센의 빅토리아와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로 위의 언니들과는 나이차가 꽤 났습니다. 특히 큰언니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는 베아트리스가 태어난 다음해에 결혼했었죠. 물론 프린세스 로열은 좀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이긴 합니다. 

이런 상황은 베트아트리스가 언니들이 아니라 조카들과 비슷한 또래가 되게 했고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양상을 보여주죠. 다시 말해서 베아트리스는 조카들과 함께 신부 후보로 거론되었죠. 이를테면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가 결혼하기 전 신부 후보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 때 빅토리아 여왕의 두 외손녀들은 프로이센의 샤를로테와 헤센의 빅토리아와 함께 베아트리스 공주가 언급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베아트리스 공주는 결국 조카와 동서 지간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헤센의 빅토리아는 매우 독립적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 앨리스 공주가 사망한 뒤 헤센 대공의 궁정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갔으며 어린 동생들을 엄마처럼 돌보기도 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는 자신의 결혼 역시 독립적으로 결정했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 외할머니 닮았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가 결혼한 남자는 빅토리아의 오촌이었던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였습니다. 사실 루드비히는 빅토리아와 결혼하기에는 잘생긴 외모 외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남자였습니다. 비록 헤센 대공가의 방계 가문이긴 했지만 부모가 귀천상혼 했기에 헤센 대공가문에서 상속받을 영지나 재산은 없었죠. 이 때문에 왕족 치고는 부유하지도 않았죠. 또 어린 시절부터 영국 해군으로 복무했기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일 년의 반 이상을 바다에서 지냈고 이런 상황은 남편감으로 좋다는 평가를 못 듣는 상황 중 하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람둥이로도 명성이 자자했고 빅토리아가 그와 결혼을 결정할 때쯤에는 사실 사생아까지 태어났으며 루드비히의 부모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돈을 주고 해결할 정도였었죠.(루드비히의 딸을 낳았다고 알려진 여성은 바로 릴리 랭트리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아버지인 헤센 대공은 물론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반대까지 끌어내게 됩니다. 뭐 빅토리아 여왕은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가 못마땅했다기 보다는 헤센 대공가를 책임지는 장녀인 빅토리아가 헤센을 떠나 영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반대한 것이긴 하지만요. 

헤센의 빅토리아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결국 져줄 것을 알았던 아버지보다는 옹고집으로 유명한 외할머니를 잘 설득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결국 외할머니의 허락을 받아내게 됩니다.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


1884년 4월 30일 헤센의 빅토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오촌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결혼합니다. 여기에는 어머니 없이 결혼하는 외손녀를 보러 특별히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했죠. 물론 어머니를 따라 베아트리스 공주도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하지만 여왕은 이 결혼식 전에 불같이 화를 내는 사건이 벌어졌고, 외할머니 때문에 결혼식이 깨질까 봐 빅토리아는 전전긍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아트리스 공주는 신랑의 동생이었던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를 만났고 둘은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기로 결정했죠. 


베아트리스 공주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난리가 났습니다만 결국 육 개월간의 냉전 끝에 베아트리스는 하인리히와 결혼할 수 있게 됩니다.


베아트리스와 하인리히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일 당황스러운 사람은 바로 베아트리스의 조카이자 하인리히의 형수였던 헤센의 빅토리아 일 것입니다. 이모가 동서, 그것도 손아랫동서가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왕족들은 자주 친척들 간에 결혼을 했기에 대충 호칭이 "커즌"아니면"안트, 엉클"로 통일되는 상황이긴 했고,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았던 헤센의 빅토리아는 아마도 노처녀로 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모가 결혼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축하해주기로 했었을듯합니다.


하지만 헤센의 빅토리아에게 난감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호칭 문제에서 드러납니다. 베아트리스는 하인리히와 결혼하면서 조카인 빅토리아에 이제 우리 동서(sister-in-law)가 되었으니 "sister"라고 부르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이미 이모(aunt)라고 부르고 있기에 바꿀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 입장에서는 예뻐하는 외손녀와 역시나 안 놔주던 막내딸이 동서지간이 되어서 자신 곁에 머물러서 좋았을 겁니다.



더하기

빅토리아와 베아트리스가 조카-이모관계여서 빅토리아의 시동생인 하인리히가 베아트리스보다 많이 어릴 것 같지만 실은 한 살밖에 안 어립니다. 이것은 오묘한 나이 관계 때문이었는데 빅토리아와 베아트리스는 여섯 살 차이가 났습니다. 그런데 빅토리아의 남편인 루드비히는 빅토리아보다 아홉 살 더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루드비히는 베아트리스 공주의 남편감으로 거론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루드비히와 동생인 하인리히는 네 살 차이가 났습니다. 

그 결과 베아트리스 공주가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보다 한 살 더 많았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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