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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15. 2015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가벼운 역사 이야기

보통 엄마들이 딸들이 속썩일때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사람들은 딱 이 말에 맞는 경 우일 겁니다.


복잡한 인도 사는 대충 봐도 복잡한데 하여튼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복잡한 와중에 영국의 식민지배하에 놓여있었습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는 한마디로 말해서 그냥 기존의 지방 분권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면서 인도의 외교권이나 행정권에 어느 정도 영국이 개입하는 방식이었죠. 이 때문에 무굴제국 때부터 존재하던 수많은 지방 군주들의 권리를 그대로 인정했었습니다.


서인도의 구자라트 쪽에 "바로다"라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마라타 제국의 재상이었던 필라오 라지 가이크바드가 재상으로 봉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 왕국으로 이 왕국은 "가이크바르(또는 가이크바드)" 가문의 통치를 계속 받게 되죠. 영국의 동인도회사와의 전투에서 패배해서 왕국의 지배권을 상실할뻔했지만 과감하게 영국 본국과 협상을 해서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신 영국을 종주국으로 인정했고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어쨌든 이 바로다 왕국을 근대적으로 개혁했었던 인물이 사야지라오 3세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국가를 서구 근대적 국가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었던 인물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 교육도 있었죠. 그리고 그 혜택은 그의 고명딸인 인드라 라제도 받게 됩니다. 인드라 라제는 당시 다른 마라타족 여성들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었는데 그녀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야지라오 3세는 딸을 자유 결혼시킬 정도로는 개방적이지 않았는데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딸보다 20살이나 많은 다른 마라타족 국왕과 딸을 결혼시키기로 결정했고 18살의 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합니다. (게다가 신랑감은 홀아비이기 까지 했었죠.)


대비와 그 딸과 함께있는 샤라지라오 3세, 역시 복잡한데 대충 샤라지라오 3세가 입양형식으로 대비의 선택을 받아 국왕이 되었습니다




인드라 라제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또래의 남자의 후처!!가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식은 잠시 늦춰졌는데 바로 인도의 중요한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었죠. 1911년 "델리 두르바"라는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이것은 쉽게 생각하면 인도 내 군주들이 상위 군주로 인도 황제를 겸직하곤 영국의 국왕에게 충성 맹세함으로써 영국의 국왕이 인도 제국의 황제임을 알리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때는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5세와 그의 왕비인 메리 왕비가 직접 인도에 왔었죠. 이 때문에 인도 내 모든 왕족들이 가족들과 함께 델리로 모여들었는데 보통 이럴 때 왕족들이 자주 눈을 맞게 됩니다.


1911년 델리 두르바



인드라 라제는 영국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벵갈 지방의 작은 왕국인 "쿠츠베하르"의 마하라자의 여동생을 만나러 갔고 그곳에서 마라하자의 남동생인 지텐드라 나라얀과 눈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됩니다. 약혼자에게 "결혼할 수 없다"라는 전보를 보내버린 것이었죠. 뭐 아버지의 친구였던 약혼자는 적당히 이해해주고 두 나라 간의 불화는 없었지만, 약혼은 당연 깨졌고 온 인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벵갈지방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곳이었으며 이 때문에 벵갈지방의 통치가문들은 인도의 어느 곳보다도 더 서구화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쿠츠베하르는 당시 마하라자의 아버지대부터 영국에서 공부했으며 마하라자나 마하라자의 동생 역시 모두 영국에서 공부했었죠. 인드라 라제와 눈이 맞았던 지텐드라 나라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이튼스쿨에서 공부했었으며 영국의 대학을 다녔습니다.

이런 서구화된 쿠츠베하르는 바로다의 국왕 입장에서 볼때 서양에 의해 타락한 이들이라고 바라봤으며 샤야지라오 3세는 이런 가문에 고명딸을 줄 수 없었다고 생각하죠. 인드라 라제는 부모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야지라오 3세는 왕궁으로 딸의 남자친구를 불렀고, 옥좌의 방에서 양옆에 총리대신과 영국 행정관까지 앉혀놓고 딸을 포기하라고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둘은 더욱더 불타올랐는데, 결국 부모는 둘이 야반도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집을 꺾고 결혼시키기로 할 정도였죠.


지첸드라 나라얀, 후에 쿠츠 베하르의 군주


인드라 라제와 지텐드라 나라얀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인드라 라제의 어머니는 절대 결혼을 축복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이 아이를 낳고 산후가 좋지 않게 되자 마음을 풀고 딸과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었죠.


어쨌든 시간은 흘러 흘러 인드라 라제는 다섯 아이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은 형이 후손 없이 죽은 뒤 마하라자가 되었고 인드라도 이제 쿠츠베하르의 마하라니 인드라 데비가 되죠. 하지만 인드라의 남편 역시 병으로 일찍 사망했고, 인드라의 아들이 쿠츠베하르의 마하라자가 됩니다. 그리고 인드라 라제는 딱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소리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파티에서 마하라니는 자신의 큰딸이 어디 마하라자의 사촌과 결혼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서 딸을 추궁했더니 딸은 결혼 허락이 안 떨어질 것을 알고 그냥 남자친구와 등기소에서 결혼해버렸다고 고백하죠. 고명한 왕가의 딸이 등기소에서 제대로 된 의식 없이 결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인드라는 너무나 화가 났었죠. 하지만 이미 법적으로 결혼한 이상 더 이상의 추문을 막으려면 그냥 제대로 된 결혼식을 치러주는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결혼 준비를 위해 마하라니의 어머니인 바로다의 마하라니도 오게 되죠.


인드라의 둘째 딸은 언니가 엄마한테 크게 야단 맞을 것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큰딸은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만나고 나온 뒤 크게 야단 맞은 기색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동생이 괜찮으냐고 물었을 때 큰딸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앞에서 야단을 안 맞았다고 이야기하죠.  왜냐는  동생의 물음에 큰딸은 외할머니 앞에서 엄마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둘째딸이 방안을 봤을때, 방에서는 인드라와 그녀의 어머니가 20년 전의 일로 서로 말다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이집엄마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둘째 딸네미는 느닷없이 부인이 둘이나 있는 남자의 셋째 부인으로 가겠다고 난리 쳤었대나 어쩐대나 그랬답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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