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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un 26. 2020

프란츠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2)

스웨덴의 소피아 공주, 바덴의 대공비

바덴의 대공비가 되는 스웨덴의 소피아 공주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복잡한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소피아 빌헬미나 카타리나 마리아 로비사 카를로타 안나Sofia Vilhelmina Katarina Maria Lovisa Charlotta Anna는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그의 아내인 바덴의 프레데리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스웨덴의 소피아, 바덴의 대공비(1830), 빈터할터


그녀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스웨덴의 국왕이었지만 스웨덴 귀족들의 반발을 사는 정책을 시도하다가 결국 쿠데타로 쫓겨났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프레데리카는 바덴 대공의 손녀이자 바덴 대공의 누나였는데 그녀의 언니인 루이제는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결혼해서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스웨덴의 관계 때문에 스웨덴 국왕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가 그녀와 결혼한 것이었죠.


스웨덴의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프레데리카 왕비, 소피아의 부모


아버지가 스웨덴에서 쫓겨난후 가족들은 외가인 바덴 대공가문을 의지해서 살아가야했습니다. 그녀의 외가도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을 지지했고 나폴레옹과 인척관계를 맺게 됩니다. 소피아 공주의 외삼촌은 나폴레옹과 연결된 인물이었던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와 결혼했었죠.( 여기도 복잡한 관계입니다.)


소피아는 스웨덴의 공주였지만 쫓겨난 국왕의 딸이었기에 결혼에 좀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친척이었던 바덴 대공가문 출신의 레오폴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것 역시 매우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바덴의 레오폴트 1세(1831), 빈터할터


레오폴트는 사실 바덴의 대공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들이긴했지만 귀천상혼한 두번째 아내의 아들이었기에 법적으로는 상속권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덴 대공가문에 상속자가 없으면 바덴 대공령이 바이에른 왕국에 편입될 우려가 있었기에 결국 남은 남성 후손인 레오폴트와 그의 형제들을 상속자로 인정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바덴에서 레오폴트의 지위를 인정해줬지만 다른 유럽 왕가들에서는 레오폴트를 낮게 봤었습니다. 이에 바덴 대공가문에서는 비록 스웨덴의 공주였지만 쫓겨난 국왕의 딸로 외가에 의탁하고 있던 소피아를 레오폴트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이 결혼은 둘에게 서로의 지위를 보완하는 것이었죠. 소피아는 스웨덴의 공주였지만 쫓겨난 국왕의 딸이었고, 레오폴트는 바덴 대공의 후계자였지만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었죠. 둘의 결혼은 둘의 지위를 서로 보완해주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소피아  바덴의 대공비 (1831), 빈터할터


그리고 결국 레오폴트는 바덴의 대공이 되었으며 소피아는 레오폴트의 아내로 바덴의 대공비가 됩니다. 소피아는 바덴 대공비로 매우 의무를 잘 수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만 그녀는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오빠인 구스타프손 구스타프가 스웨덴 왕위 계승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했을때 좌절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든 후에는 스웨덴 왕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그녀의 손녀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죠.)


아들인 빌헬름과 함께 있는 소피아 (1831) 빈터할터


소피아는 남편과 잠시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카스파 하우저 살해"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카스파 하우저는 오래도록 바덴 대공인 카를 1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자 바덴 대공가문에서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특히 소피아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부부사이를 잠시 멀어지게 만들었죠. 이때문에 막내딸인 체칠리가 레오폴트의 아이가 아니라 소피아가 알고 지내던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소피아, 바덴의 대공비, (1831) 빈터할터

소피아는 남편인 레오폴트와의 사이에서 여덟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중 큰딸인 알렉산드린은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자 시아주버니였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 2세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인 루드비히와 프리드리히는 각각 바덴의 대공이 되었으며 다른 아들인 빌헬름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의 외손녀였던 마리야 막시밀로브나와 결혼했고 그의 아들은 바덴 대공가문의 후계자이자 후에 독일의 빌헬름 1세를 퇴위시키는데 일조했던 바덴의 막시밀리안(막스)였습니다. 그리고 말많았던 막내딸은 니콜라이 1세의 아들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결혼해서 러시아의 대공비가 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소피아, 바덴 대공비(1854) 빈터할터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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