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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ul 03. 2020

프란츠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3)

바덴의 레오폴트 : 바덴의 대공

바덴의 대공이 되는 레오폴트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바덴의 대공이 됩니다.


바덴의 대공 레오폴트, 빈터할터 그림


레오폴트의 아버지는 바덴의 대공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 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바덴 대공의 두번째 아내로 귀천상혼한 아내인 호흐베르크 백작부인이었습니다. 호흐베르크 백작부인은 하급 귀족으로 바덴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의 며느리였던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말리의 시녀로 일했었습니다.

그리고 호흐베르크 백작부인이 19살이었을때인 1787년 자신보다 40살 많았던 카를 프리드리히와 결혼하게 되죠. 물론 이 결혼은 귀천상혼이었기에 이 결혼으로 태어나는 자식들은 원칙적으로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카를 프리드리히의 첫결혼에서 태어난 세 아들들은 아버지의 두번째 결혼에서 태어나는 동생들의 상속권을 인정하는 서류를 작성해서 서명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이 레오폴트가 상속을 받게 되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덴의 카를 프리드리히, 바덴의 대공, 레오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의 형들에게는 후계자가 될 아이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한 조카가 바로 바덴의 대공이 되는 카를이었습니다. 카를은 정략결혼으로 나폴레옹과 연결되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와 결혼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거의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딸들만 살아남게 됩니다.이렇게 되자 결국 카를은 죽기직전에 숙부였던 레오폴트와 그의 동생들의 지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또 레오폴트는 카를의 조카이자 스웨덴의 공주였던 소피아와 결혼하므로써 지위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소피아, 바덴의 대공비, 레오폴트의 부인


결국 1819년 레오폴트는 주변 여러나라로부터 바덴 대공령의 후계자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1830년 레오폴트는 형의 뒤를 이어서 바덴의 대공이 되게 됩니다.


바덴대공으로 레오폴트는 자유주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849년 레오폴트는 바덴 대공령 내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도 가족과함께 피신해야했었습니다. 이후 다시 돌아왔지만 건강이 악화되었고 아들인 프리드리히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국정을 처리하게 됩니다.


바덴의 레오폴트, 바덴의 대공, 빈터할터 그림(1831)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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