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아라곤의 국왕 라미로 2세
아라곤 왕국은 팜플로나 왕국(나바라 왕국의 전신)의 국왕 산초 3세가 자신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라미로 산체스에게 아라곤 백작령을 주면서 생기게 된 왕국입니다. 라미로 산체스는 팜플로나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고 아라곤의 라미로 1세가 되었죠.
라미로 1세의 아들인 산초 라미레스는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통해서 결국 본국이나 다름없었던 팜플로나(나바라)의 왕위도 얻게 되죠. 산초 라미레스의 장남인 페드로가 왕위를 이었지만 아들들이 미리 죽었기에 왕위는 동생인 알폰소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알폰소는 이슬람 세력과 전투를 해서 영지를 확장했던 인물이었습니다만 그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하죠.
알폰소가 죽었을때 왕위를 이어받을만한 사람은 알폰소의 동생이었던 라미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라미로는 성직자였는데 어린시절부터 베네딕토 수도회에 들어갔었으며, 여러곳의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후에는 바르바스트로-로다의 주교의 지위에 이르른 인물이었습니다.
형인 알폰소가 죽자 아라곤과 나바라는 각자 선호한 사람을 국왕으로 선출하게 되면서 두 나라는 분리되는데 아라곤에서는 알폰소의 동생인 라미로를 국왕으로 지지했었습니다.
1134년 라미로는 이제 아라곤의 국왕 라미로 2세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수도승이자 성직자로 살았으며 갑작스럽게 국왕이 된 상황은 그에게 난감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아라곤 왕위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긴 했지만 수도승으로 살았던 그에게 현실 정치는 힘든것이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가 무능력해서 자신들의 마음대로 권력을 잡을수 있을것이라 기대했던 아라곤 귀족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48살에 국왕이 된 라미로 2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후계자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얻기 위해서 서둘러 결혼하게 됩니다. 문제는 라미로 2세가 이전에 주교였고 그의 결혼은 매우 복잡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라미로 2세는 오직 후계자를 얻기 위한 결혼이라고 주장햇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의 결혼이 적법하지 않다고 보기도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후대에는 승낙없이 결혼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그런 교회법이 정해지지 않았었기에 적법성에 대해서는 용인될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1135년 아키텐 공작의 딸이었던 푸아투아의 아그네스와 라미로 2세는 결혼했으며 목적대로 그 다음해인 1136년 딸인 페트로닐라가 태어나게 됩니다.
딸이 태어난뒤 리미로 2세는 매우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라를 경영할만한 딸의 남편감을 찾았는데 바로 이웃의 바르셀로나 백작인 라몬 베렌게를 찾아내게 됩니다. 딸이 태어난 다음해인 1137년 만 한살인 딸 페트로닐라를 23살이나 더 많은 바르셀로나백작과 약혼시켰으며 아라곤에 대한 정치를 바르셀로나 백작에게 일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이 끝나게 되자 라미로 2세는 비록 퇴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실무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이전생활을 영위했었습니다. 또 라미로 2세가 "후계자를 얻기 위해 결혼했다"라고 주장했던 푸아투의 아그네스 역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