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보다는 아들!!

가벼운 역사이야기 : 12세기 벨프 가문의 선택

by 엘아라

벨프 가문은 독일의 통치 가문중 하나로 훗날 하노버의 선제후가 이 가문출신이었으며, 당연히 하노버의 선제후였던 조지 1세가 영국 국왕이 되면서 영국의 하노버 왕가 역시 이 벨프 가문이었습니다.


벨프 가문의 선조는 이탈리아출신이었습니다. 그중 벨프는 외가의 독일쪽 영지를 물려받으면서 독일에 정착했고 매우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서 바이에른 공작령을 손에 넣으면서 독일에서 확고한 세력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죠.


벨프 1세, 바이에른의 공작


이 벨프의 아들로 바이에른 공작이었던 하인리히 9세 역시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문의 영지를 늘리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하게 되죠. 특히 그의 아내는 작센 공작의 딸로 장인이 죽고 난뒤 그와 그의 후손이 작센 공작령까지 손에 넣을수 있도록 협정을 체결했습니다만, 벨프 가문의 성장을 우려한 당시 황제 하인리히 5세의 견제로 무산됩니다. 하인리히 5세는 작센 공작령을 자신의 신하중 한명이었던 로타르에게 주게 됩니다.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9세


하인리히 9세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세력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찾은 세력은 바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었죠. 그는 딸인 유디트를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리고 황제 하인리히 5세가 1225년 사망하고 황제 선출이 진행되게 되자 당연히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사위가 황제가 되는 것을 지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하인리히 9세에게 한 사람이 접근합니다. 바로 하인리히 5세에게서 작센 공작령을 수여받았던 작센공작 로타르였죠. 로타르는 하인리히 9세에게 자신을 지지한다면 자신의 외동딸인 게르트루트를 하인리히 9세의 장남인 하인리히와 결혼시키고 작센 공작령을 물려주겠다고 하죠.


황제 로타르 2세(또는 로타르 3세)


하인리히 9세는 아마도 이 조건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며느리가 작센 공작령을 지참금으로 가져오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는 사위가 아닌 로타르를 황제로 지지했으며 결국 로타르가 황제로 즉위하게 되죠.


이 사건이후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은 숙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특히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계속해서 황제 지위에 도전했으며,하인리히 9세의 아들로 장인에게 충실했던 하인리히 10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척을 졌으며 이후 12세기동안 벌어지는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의 분쟁의 시작이 됩니다.


더하기

하인리히 9세가 편을 바꾼후 하인리히 9세의 딸인 유디트와 남편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의 관계가 정확히 어땠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1123년 둘째아이인 베르타를 낳은뒤 유디트와 프리드리히 2세 사이에서는 더이상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고 유디트는 1130년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2세와 바이에른의 유디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는 후에 황제 프리드리히 1세(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가 됩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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