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루이 르 베그 사후의 싸움
대머리왕 샤를의 아들은 말더듬이 왕 루이 정도로 해석할수 있는 루이 르 베그라는 인물입니다. 보통은 루이 2세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루이 2세는 샤를 2세의 장남이었고 샤를 2세는 아들에게 일찍 영지를 떼어주면서 독자적 영주로 세력을 갖추도록 했었습니다.
그런데 루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독자적 세력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독립적으로 결혼을 해버립니다. 그가 결혼한 여성은 부르고뉴의 안스가르드라는 여성이었는데, 일단 루이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으며 정치적으로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사이에서는 아들이 둘태어나죠.
그리고 이 사실을 안 샤를 2세는 열받았으며 아들의 결혼을 무효화 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했다고합니다. 결국 루이는 아버지가 죽기전 안스가르드와의 결혼을 무효화하는데 동의하고, 아버지가 원한 여성인 파리의 아델라이드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아델라이드와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 샤를 2세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게 되죠.
루이는 왕위를 물려받은뒤 얼마 지나지 않은 879년 사망합니다. 이때 루이와 아델라이드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는데 아델라이드는 임신중이었죠. 그리고 남편이 죽은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아들 샤를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루이가 죽고 나서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아델라이드의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보장도 없었으며 또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며 또 왕위를 노리는 세력도 있었기에 서둘러 국왕을 내세워야했습니다. 그리고 유력한 후보는 바로 루이와 루이의 전처였던 안스가르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아들인 루이와 카를로만이었죠. 결국 정치적으로 안스가르드와 루이의 결혼 무효는 다시 무효가 되었고 루이와 카를로만이 적자로 인정되어서 왕위를 잇게 됩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가 샤를을 낳으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되죠. 아델라이드와 루이의 결혼이 정당했으면 당연 샤를이 왕위계승권리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스가르드와의 결혼무효를 다시 무효로 돌린 시점이라 상황은 더 복잡해지죠.
결국 안스가르드와 두 아들들은 아델라이드를 간통죄로 고소했으며 샤를이 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물론 아델라이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를 방어했으며 결국 승소했었다고 합니다.
더하기
안스가르드의 두 아들인 루이와 카를로만은 각각 국왕이 된지 3년과 5년만에 사망했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상황이었기에 서프랑크 귀족들은 아델라이드의 아들인 샤를을 바로 국왕으로 지지하지 않고 동프랑크 국왕이나 아니면 강력한 귀족에게 왕위를 넘겼다가 898년이 되어서야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