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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Dec 11. 2020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21)

양시칠리의 마리아 카롤리나 (1822-1869)

양시칠리의 마리아 카롤리나, 오말 공작부인 Princess Maria Carolina Augusta of Bourbon-Two Sicilie, 빈터할터, 1840년대 후반

양시칠리의 마리아 카롤리나는 살레르노 공인 양시칠리의 레오폴도와 그의 조카이자 아내였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클레멘티나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양시칠리의 마리아 카롤리나의 아버지인 레오폴도는 시칠리와 나폴리의 국왕이었던 페르난도와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 여대공의 아들이었습니다. 레오폴도의 어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는 바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이기도 했었죠. 마리아 카롤리나의 어머니인 클레멘티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와 양시칠리의 마리아 테레사의 딸이었습니다. 결국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사는 사촌간이었으며, 레오폴도와 클레멘티나 사이는 외삼촌과 조카였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카롤리나의 이모가 바로 루이 필리프의 아내였던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였습니다.


외가인 빈에서 태어난 마리아 카롤리나는 당대 인기있는 신붓감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1830년대와 1840년대에는 결혼할만한 나이의 공주들이 많이 없어서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카롤리나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촌이었던 앙리 도를레앙이었습니다. 둘은 사촌이었기에 왕래를 했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었죠. 둘은 서로 결혼한길 원했으며 이때문에 부모가 서로 다른 혼담을 추진했을때 모두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앙리 도를레앙, 오말 공작, 빈터할터 작품


앙리와 결혼한뒤 오말공작부인으로 불리게 되는 마리아 카롤리나는 튈르리 궁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결혼후 부부는 여러가지 공적 의무를 수행하면서 서로를 더 잘알게 되었으며 서로에게 매우 헌신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마리아 카롤리나는 매우 성실했고 다정한 인물이었기에 시집식구들이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고도 합니다. 마리아 카롤리나는 남편이 알제리로 갔을때 그와 함께 알제리로 갔었다고 합니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난뒤 마리아 카롤리나도 남편과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을 합니다. 많은 망명 왕족들이 그렇듯이 오말공작부부도 경제적문제에 처했고 결국 마리아 카롤리나의 보석들중 일부를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카롤리나는 빅토리아 여왕과 친구가 되었으며 여왕은 오말 공작 가문 사람들을 위해서 런던 인근에 집을 마련해줬었다고 합니다.


오를레앙 하우스, 빅토리아 여왕이 오말 공작 부부에게 마련해준 집


마리아 카롤리나는 1866년 장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너무나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1869년 사망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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