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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r 12. 2021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22)

앙투안 도를레앙, 몽팡시에 공작 (1824-1890)

앙투안 도를레앙, 몽팡시에 공작 Antoine d'Orléans , 이 그림은 사실 빈터할터 그림이 아니라 모사작품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막내 아들인 앙투안 도를레앙은 아버지로부터 몽팡시에 공작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야심 가득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루이 필리프는 아들인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을 에스파냐의 인판타였던 루이사 페르디난다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루이사 페르디난다는 에스파냐의 국왕 페르난도 7세의 둘째딸이었습니다. 큰딸은 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스파냐의 군주가 되는 이사벨 2세였죠. 

사실 루이 필리프는 에스파냐 왕위를 자신의 가문 사람이 잇길 바래서 아들을 이사벨 여왕과 결혼시키길 바랬다고 합니다만, 에스파냐 왕가의 복잡한 사정으로 이사벨 여왕은 친가쪽 사촌과 결혼하게되죠. 그리고 루이 필리프는 막내아들을 이사벨의 동생과 결혼시키게 됩니다. 사실 당대에 이사벨 2세의 남편은 동성연애자이기에 아마 이사벨 여왕이 후계자를 낳을수 없을 것이라 여겼고 그때문에 루이사 페르난다의 후손들이 에스파냐 왕위를 이을수 있을 것이라 추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앙투안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벨 2세는 여러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인판타 루이사 페르디난다, 앙투안의 부인, 빈터할터 그림,1847년경


앙투안은 결혼후 에스파냐 왕위계승후보자의 남편으로 에스파냐에서 살았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앙투안은 에스파냐 국왕이 되겠다는 야망이 가득했었다고 합니다.


복잡한 에스파냐 정치 상황때문에 결국 이사벨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에스파냐의회는 국왕을 새로운 인물로 선출하려합니다. 이때 당연히 에스파냐 왕가에서는 이를 반대했죠. 하지만 앙투안은 자신이 에스파냐 국왕이 되길 원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에스파냐 왕실에서 보면 반역이나 다름없었죠. 결국 이사벨 2세의 사촌이자 시동생이었던 세비야 공작 엔리케는 화가 나서 앙투안과 결투를 했고, 그 결과 엔리케가 결투후에 사망하게 되었으며 에스파냐 왕가내에서 앙투안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결투로 세비아 공작을 죽인 몽팡시에 공작 


결국 앙투안은 국왕이 되지 못했으며 오랜 망명생활을 했어야했습니다만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올수 있게 됩니다. 왜냐면 이사벨 2세의 아들인 알폰소 12세가 즉위하면서 그의 딸이었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가 왕비가 되기 때문이었죠. 알폰소 12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촌과 결혼하길 고집했고 결국 결혼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물론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 그리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앙투안은 에스파냐에서 여러가지 공적 의무를 수행하면서 살았었습니다. 


나이든 후의 몽팡시에 공작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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