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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r 19. 2021

빈터할터가 그린 사람들...(23)

인판타 루이사 페르난다, 몽팡시에 공작부인 (1832-1897)

인판타 루이사 페르난다Infanta María Luisa Fernanda of Spain, Duchess of Montpensier, 빈터할터, 1847년


인판타 루이사 페르난다는 에스파냐의 국왕 페르난도 7세와 그의 네번째 아내이자 조카였던 양시칠리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루이사 페르난다에게는 언니인 이사벨이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7세는 세번의 결혼생활동안 건강한 자녀를 얻지 못했기에 네번째 결혼에서도 건강한 자녀를 얻지 못할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왕위는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인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에게 돌아갈것이라고 여겨졌었죠. 하지만 그는 네번째 아내에게서 두 딸을 얻게 되었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루이사 페르난다의 부모, 페르난도 7세와 양시칠리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당시 에스파냐 법률상으로는 여성 왕위계승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왕가는 부르봉 가문이었으며 부르봉 가문은 살리카법을 따라서 여성계승자를 인정하지 않았죠. 하지만 에스파냐 자체는 여성계승자를 인정하는 곳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페르난도 7세가 되어서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는 딸에게 왕위를 물려주길 바랬는데 법률상으로는 그럴수 없었죠. 하지만 에스파냐에서는 원래 여성 계승자를 인정했기에 결국 그는 법률을 바꾸게 됩니다. 당연히 이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었고 결국 이 상황은 내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루이사 페르난다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7세는 루이사 페르난다가 2살도 되지 않았을때, 언니가 세살정도때 사망합니다. 그리고 자매는 에스파냐의 상속녀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눈독을 들이게 되죠. 결국 이사벨은 가문의 뜻에 따라 사촌과 결혼했으며, 루이사 페르난다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의 아들이었던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과 결혼했습니다.


앙투안 도를레앙, 몽팡시에 공작


남편과 함께 에스파냐에서 살았던 루이사 페르난다는 남편의 뜻을 따르는 평범한 왕족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족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그녀의 남편인 앙투안은 왕위에 대한 야심이 가득했고 이것은 언니 이사벨이 앙투안은 물론 동생과 동생의 자녀들에 대해서 모두 못마땅해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판타 루이사 페르난다, 몽팡시에 공작부인, 에스파냐 전통복장,빈터할터, 1847년경


루이사 페르난다는 에스파냐에서 이사벨 여왕이 퇴위하고 결국 다른 인물을 국왕으로 선출했을때 남편과 함께 에스파냐를 떠나야했었습니다. 하지만 조카인 알폰소 12세가 즉위하고 난뒤 에스파냐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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