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같은 결혼생활을 한 부부

가벼운 역사이야지 : 로베르 2세와 아를의 콩스탕스

by 엘아라

프랑스(서프랑크)의 국왕이었던 로베르 2세는 사랑했던 아내인 베르타와 헤어진뒤 1003년 프로방스 백작의 딸이었던 아를의 콩스탕스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그야 말로 폭풍우 같은 결혼생활로 이어지게 되죠.


KonstancieProv.jpg 콩스탕스


아를의 콩스탕스는 프랑스 남부 출신으로 그녀의 친인척들은 프랑스 남부의 중요한 세력을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콩스탕스와 로베르 2세의 결혼은 이런 정치적 목적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콩스탕스는 궁정으로 오면서 마찰을 빚게 됩니다. 프랑스 북부 지방과 프랑스 남부지방은 문화가 좀 달랐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콩스탕스가 궁정에 왔을때 궁정 사람들은 콩스탕스의 모습이나 행동이 북부 지방의 관념과 좀 달라서 매우 놀랐다고도 합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콩스탕스와 로베르 2세간의 갈등이 좀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로베르 2세는 여전히 전 아내였던 부르고뉴의 베르타를 잊지 못했었으며 아마 콩스탕스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로베르 2세 주변에서 이런 로베르 2세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으며 이것은 아마도 로베르 2세가 새 아내보다 옛아내를 더 생각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콩스탕스 입장에서도 결혼해서 왔더니 궁정에서는 자신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을 보호해줘야하는 남편은 도리어 자신이 아닌 전처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속터질일이었을 것입니다.


Robert_II_de_France_et_Constance_d'Arles..jpg 로베르 2세와 콩스탕스, 후대이ㅡ 그림


이런 불만은 점차 깊어지게 되는데 둘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났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건 하나가 일어나게 됩니다.


국왕의 친구였던 위그 드 보베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콩스탕스나 콩스탕스의 친인척들과는 반대되는 세력의 인물이었던듯합니다. 그리고 결국 위그 드 보베는 콩스탕스의 사촌이었던 앙주 백작 풀크 3세에 의해서 살해당하게 되죠. 이에 대해서 궁정에서는 엄청나게 말이 많았는데 특히 위그 드 보베가 로베르 2세에게 콩스탕스와 헤어지고 전처인 베르타와 재결합하라고 조언했기에 콩스탕스가 그를 미워했었으며 아마도 이 살해사건에 콩스탕스도 개입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합니다.


Sceau_de_Foulques_Nerra.jpg 앙주 백작 풀크 3세의 씰


안그래도 아내와 사이가 나빴던 로베르 2세는 결국 더이상 참지 않고 교황에게 달려가서 콩스탕스와 이혼하고 전처인 베르타와의 결혼을 다시 이어갈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때 콩스탕스와 로베르 사이에서는 이미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났었음에도 로베르는 교황에게 달려간것이었죠.


Robert_II_le_Pieux_remettant_une_séquence_au_pape.png 교황과 함께 있는 로베르 2세


하지만 교황은 둘의 결혼을 계속 유지하라고 판단했으며 로베르 2세는 어쩔수 없이 다시 아내 콩스탕스와 살아야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1010년 베르타가 사망하면서 더이상 베르타와의 삶을 생각할수는 없었죠.


이후 부부는 평온하게 지내는듯합니다만, 아들들이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권력을 두고 갈등을 벌였을때, 콩스탕스는 아들들의 편을 들었다고합니다.


Robert_Konstancie.jpg 로베르2세와 콩스탕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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