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프랑스의 로베르 2세와 부르고뉴의 베르타
프랑스(서프랑크)의 국왕 위그 카페는 아들인 로베르 2세를 플랑드르 백작부인이었던 로잘라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로잘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여성은 이탈리아 국왕의 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참금도 많았기에 아들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결혼을 시켰던 것이죠.
로베르 2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지만, 사실 아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자 이를 빌미로 아내와 헤어지려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결혼한지 3년쯤 지난후부터 별거에 들어가게 되죠.
로베르 2세는 그리고 신붓감을 찾아냅니다. 바로 블루아 백작 부인이었던 베르타라는 여성이었죠. 부르고뉴의 베르타라고 알려진 그녀는 부르고뉴 국왕의 딸이었으며, 어머니는 프랑스(서프랑크)의 공주였던 마틸다였습니다. 이때문에 로베르 2세와 베르타는 육촌관게였는데 로베르 2세의 아버지인 위그 카페와 베르타의 어머니인 마틸다는 이종사촌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르타의 남편은 996년 3월 사망했고, 로베르는 과부가 된 베르타와 결혼하길 바랬습니다.
베르타의 남편이었던 블루아 백작은 원래 카페 가문을 적대하던 사람이었으며 아마 위그 카페는 이것을 마음에 걸려했을 것입니다. 로베르 2세와 베르타의 결혼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반대했던 것이죠. 하지만 996년 10월 위그 카페는 사망했으며 반대하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로베르 2세는 베르타와 결혼하게 되죠.
하지만 베르타와 로베르 2세의 결혼에 테클을 거는 쪽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였죠. 교회법상 로베르 2세와 베르타는 결혼할수 없는 친족관계였으며 둘의 결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회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둘의 결혼을 승인해주지 않았으며 결국 둘은 헤어져야했습니다.
이후 로베르 2세는 1003년 다시 결혼하지만, 여전히 베르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으며 결국 다시 한번 교황에게 베르타와의 결혼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황은 다시 한번 거절했으며 이후 베르타가 사망하면서 로베르 2세의 소망도 끝이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