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인줄 알았는데...

가벼운 역사이야기 : 아라곤의 비올란테

by 엘아라

오래도록 유럽의 왕가에서는 결혼이 외교적 수단중 하나였습니다. 두 나라간 동맹을 맺으면 두 나라의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켜서 이를 보증하게 되죠. 그리고 13세기 아라곤의 인판타였던 비올란테(욜란다) 역시 이런 정략결혼의 대상이 됩니다.


비욜란테의 아버지인 하이메 1세(차이메 1세)는 이웃나라인 카스티야와의 동맹을 맺었으며, 자신의 장녀인 비올란테를 카스티야의 국왕인 알폰소 10세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이런 정략결혼인 경우 나이차가 많이 나거나 한쪽이 매우 어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연히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죠.


아라곤의 하이메 1세


비올란테와 알폰소 10세 역시 15살 정도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리고 비올란테의 나이는 아마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 최소 결혼연령이 12살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비올란테의 나이도 아마 이또래였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어쨌든 아라곤의 비올란테와 카스티야의 앒폰소 10세는 1249년 1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죠.


알폰소 10세는 아마도 적자가 급했을 것입니다. 결혼할때 이미 30대 가까운 나이였었는데, 중세시대는 적은 나이는 아니었고 그 나이에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왕권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랬기에 알폰소 10세는 결혼하고 나서 서둘러 후계자를 얻길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알폰소 10세와 비올란테 사이에서는 결혼 몇년동안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카스티야 내부 상황때문에 더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됩니다. 알폰소 10세는 동생인 인판테 엔리케와 불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에게 후계자가 없다면 안그래도 야심 가득한 동생이 왕위를 대놓고 노릴것이 분명했기에 더욱더 신경이 곤두 섰을 것입니다.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

결국 알폰소 10세는 비올란테와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왕국들은 서로 결혼동맹이 빈번했었기에 근친 결혼이 많았으며 이때문에 결혼이 무효화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은 오래도록 이슬람 세력과 투쟁을 하던 지역이었기에 교회에서는 이들의 근친결혼에 대해서 나름 너그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

그리고 알폰소 10세는 교황에게 결혼을 무효화 할수 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올란테는 1253년 결국 첫 아이인 베렌겔라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적어도 10명의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남편 알폰소 10세와 장남인 페르난도 데 라 크레다와 함께 있는 비올란테


결국 비올란테가 결혼 후에 바로 아이를 낳을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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