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러시아의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결혼 이야기
러시아의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와 그의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덴마크의 다우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그의 위로는 두명의 형이 있었기에 미하일 대공이 황위를 잇는다는 것은 그리 큰 가능성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가 죽고 형인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뒤에는 아마도 조카들이 태어날것이기에 좀 더 황위와 인연이 없어보였죠.
하지만 상황은 미하일 대공을 점차 중요한 황위계승자가 되게 만듭니다. 먼저 1899년 둘째형이었던 게오르기 대공이 사망합니다. 그리고 게오르기 대공이 사망할때까지 형인 니콜라이 2세에게는 남성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았죠. 남성후계자만이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될수 있었기에 형인 니콜라이 2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황위는 미하일 대공에게 돌아갈것이었습니다. 물론 계속 딸들이 태어나긴했지만 아이들을 게속 얻고 있었기에 니콜라이 2세에게 아들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오르기 대공이 죽은 시점에서 니콜라이 2세에게는 딸만 셋이 있었죠. 게다가 1901년 태어난 아이도 딸이었기에 황실에서는 미하일 대공의 존재는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미하일 대공도 나이가 들어갔으며 신부를 맞이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는 일명 "동등한 결혼"을 해야 상속권을 인정받을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통치가문 출신인 러시아 대공(또는 여대공)들은 역시나 통치 가문 출신의 여성(또는 남성)과 결혼해야 상속권을 인정받을수 있다는 것이었죠.
물론 미하일 대공이 사랑에 빠진 여성은 통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바로 "베이비 비"라는 애칭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베아트리스였죠. 베아트리스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였으며, 아버지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었던 앨프러드였습니다. 하지만 미하일 대공과 베아트리스의 사이는 이뤄지기 힘든 사이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둘은 사촌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교회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하일 대공의 고모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알렉산드르 2세의 딸)이 바로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였던 것이죠.
둘이 아주 결혼을 못할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짜르(미하일의 형인 니콜라이 2세)가 이 결혼을 허락한다면 둘의 결혼이 허락받을 여지가 있었죠. 하지만 러시아 황실에서는 이 결혼을 반대합니다. 사실 사촌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긴 하지만 좀더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베아트리스의 언니인 빅토리아 멜리타(더키)는 황후의 오빠와 이혼했었습니다. 당대 유럽 왕족들 사이에서 이혼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더키가 이혼을 요구했었기에 모든 친척들이 더키를 비난했었을 뿐만 아니라 미하일의 형수인 알렉산드라 황후는 더키에 대해서 매우 나쁜 감정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러시아 황실에서 미하일과 베아트리스 사이를 사촌간이라는 이유로 더 반대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미하일 대공과 베아트리스는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베아트리스와 헤어진 미하일 대공은 다시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집니다. 여동생 올가의 시녀인 여성인 알렉산드라 코시코프스카야었죠. 하지만 그녀는 통치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에 만약 미하일이 그녀와 결혼하려한다면 미하일의 계승권을 박탈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 황실에서 큰 문제였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1904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 알렉세이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곧 혈우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것은 니콜라이 2세의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알렉세이는 언제 죽을지 몰랐으며 이것은 미하일 대공이 여전히 중요한 황위계승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미하일 대공은 알렉산드라 코시코프스카야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미하일 대공은 다시 한 여성과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야 불코프라는 여성으로 자신의 부대 장교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귀족출신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이미 한번 이혼한 경력까지 있는 여성이었죠. 미하일 대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으며 곧 큰 스캔들이 됩니다. 그리고 나탈리야는 남편과 별거 상황에서 미하일 대공의 아이를 가졌으며 결국 남편과 다시 한번 이혼하고 미하일 대공의 아들인 게오르기를 낳은뒤 미하일 대공과 함께 살게 됩니다.
황실에서는 처음에 미하일 대공이 두번이나 이혼한 여성인 나탈리야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큰 의미룰 부여하지 않았었습니다. 정부정도로 여겼었죠. 하지만 미하일 대공은 자기 아들의 어머니인 나탈리야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결국 1912년 황실의 허락없이 나탈리야와 결혼해버립니다. 미하일 대공과 나탈리야는 여행가는척하고서는 떠나서는 빈의 한 정교회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려버린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큰 문제로, 안그래도 불안정한 러시아 상황에 후계자 문제를 더욱더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계승법상 미하일 대공은 상속권을 박탈당하게 되었으며 결국 후계자 지위도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만약 처음부터 사촌이었던 베이비비와 결혼을 허락했다면, 아마 훗날의 이런 혼란한 상황은 피할수는 있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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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베이비비 입장에서는 러시아 혁명을 피할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할수 있을듯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