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된 여왕 : 스웨덴의 울리카 엘레오노라 (1)

첫번째 글 : 들어가며

by 엘아라

스웨덴의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사실 이전의 스웨덴 여왕이었던 크리스티나처럼 왕위에서 물러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크리스티나와 다른 점은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왕위를 짐처럼 생각하고 내던져버렸다면,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이 왕위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하는 남편에게 줬다는 것입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삶은 사실 그렇게 아름답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모인 칼 11세와 울리카 엘레오노라 왕비는 정략결혼이었으며 이 때문에 아주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칼 11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했으며 울리카 엘레오노라도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였습니다만 정치적 상황은 둘이 다정함만 누리지는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할머니였던 헤드빅 엘레오노라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 할머니는 좀더 먼 존재였을 것입니다. 왜냐면 헤드빅 엘레오노라는 칼 12세의 후계자로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언니인 헤드빅 소피아를 지지했었으며 헤드빅 소피아가 죽은뒤에는 헤드빅 소피아의 아들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칼 프리드리히를 지지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어머니를 무시하고 자신마저 무시하는 할머니의 존재에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사실 자라면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는 오빠인 칼 12세와 언니인 헤드빅 소피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 12세는 당연히 왕위계승자이자 국왕으로 중요했었으며, 헤드빅 소피아는 칼 12세 다음의 왕위계승자로 중요했었습니다. 게다가 할머니인 헤드빅 엘레오노라는 헤드빅 소피아를 무척이나 아겼으며 그녀를 왕위계승자로 지지햇었기에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중요성에서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삶에서 중요한 때는 바로 남편인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와 결혼한 것일듯합니다. 이 결혼은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프리드리히는 당연히 아내의 스웨덴 왕위계승권리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것은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언니가 죽은뒤 중요한 왕위계승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여왕이 됩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을 매우 사랑했으며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왕위를 원하는 남편을 위해서 스웨덴의 왕위를 주게 됩니다. 사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영국의 윌리엄3세와 메리 2세처럼 공동군주로 즉위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의회가 이를 거부하자 결국 남편을 위해서 자신이 왕위를 포기하고 왕비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남편인 프리드리히는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 늘 충실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아내 덕분에 왕위를 얻었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어린시절부터 소외당했던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어린시절부터 이런 상황을 견디면서 지냈었으며 결국 아마도 남편의 이런 푸대접에 대해서 그냥 견디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사실 스웨덴의 정치 상황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왕위를 얻기 위해서 의회가 왕위계승자를 선택하게 했고 결국 이것은 이후 스웨덴에서 왕권이 극히 약화되는 시기인 “자유주의시대”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이전 바사 가문 출신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크리스티나 여왕처럼 왕위를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크리스티나와는 전혀 다른 원인과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울리카 엘레오노라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그녀의 삶을 따라가면서 살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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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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