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비발디는 오래도록 베네치아에서 지위를 유지했었으며 잠시 그 지위를 떠나있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왔을때 지위를 유지할수 있었죠.하지만 나이들어가는 비발디에게 점차 어려움이 따르기 시작합니다. 비발디는 기본적으로 "사제"였기 때문에 "흥행요소가 들어가는 여러가지 음악활동"을 할경우 추문의 대상이 될수 있었습니다. 특히 든든한 후원자가 없을경우나 후원자가 등을 돌릴경우 더하죠.
1730년대가 되면서 비발디의 삶에 어려움이 나타납니다. 특히 절정은 1737년이었죠. 1736년 늘 의지가 되었던 아버지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1737년 비발디는 무척이나 난처한 일을 겪게됩니다.
1737년 안토니오 비발디는 페라라에서 오페라는 공연하려했지만 금지당합니다. 당시 페라라는 교황령의 일부로 추기경이 봉신으로 이곳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페라라를 통치하던 사람은 루포추기경이었습니다. 추기경은 막 페라라의 통치를 시작한 상태였고 성직자로써 그는 도덕적인 생활과 가톨릭의 규칙ㅇ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추기경에게 비발디는 그가 찾던 타락한 이미지에 딱 맞는 인물이었죠. 게다가 비발디를 시기하던 다른 음악가들 역시 이런 비발디에 대한 비방에 동참합니다.
결국 비발디는 1737년 페라라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로는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 성직자"의 오페라를 허용할수 없는것과 "안나 지로"와의 불순한 관계때문이라는 것이었죠.비발디는 이후 오래도록 안나 지로와의 관계는 순수한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일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결백을 호소합니다만 안나 지로와의 이야기는 이제 남은 생은 물론 죽은 뒤에도 따라다닐 이야기가 되죠.
이때쯤 비발디의 경제상황도 매우 나빠지게 됩니다 페라라의 공연 취소는 비발디의 경제적 상황을 더욱더 어렵게 하는 것이었죠.
1740년 봄,"피에타"는 비발디의 여러 작품들을 기록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비발디가 이미 이때 베네치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할수 있는 이야기일듯합니다. 비발디는 경제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빚때문에 도시에서 도망간것은 아닐듯합니다. 당시 유행은 이제 나폴리 작곡가들이었으며 하세의 오페라들이 대세였죠. 이런 상황은 비발디가 더이상 베네치아에서 자신의 음악을 할수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발디는 더 넓은 세상인 빈으로 가기로 결심했었죠. 비발디의 후원자중 한명이 황제에게 그를 소개시켜주려했을듯합니다.
하지만 1740년 가을 황제 카를 6세는 사망했고,그의 뒤를 이은 마리아 테레지아는 바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에 돌입하게 되죠. 빈으로 간 비발디는 아주 운이 없지는 않았었습니다. 1742년에 계획된 극장 스케줄에는 비발디의 오페라가 있었으며 어쩌면 비발디는 운을 잡을수도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1741년 7월 안토니오 비발디는 60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비발디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비발디의 묘지는 더이상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그곳은 현재 기술 연구소가 들어서있습니다.) 그가 사망했던 집 역시 현재에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그 자리에 현재 호텔이 들어서있다고 합니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음악은 오래도록 서고에 묻혀있었으며 그 이름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20세기 이전까지는 그의 이름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비발디의 가장 유명한 곡들인 "사계"조차도 "작곡자 알수없음"이라고 알려질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발디의 이름이 아예 잊혀진것은 아니었는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이야기를 통해 비발디의 이름을 기억되기도 합니다. 바흐는 비발디의 아리아와 콘체르토에 영향을 받았으며 비발디의 곡을 편곡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후대에 바흐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비발디"라는 이름을 알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수 있었죠.
비발디의 이름은 20세기에 들어서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발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비발디의 작품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후 그의 작품이 많이 상실되었다고 여겨졌지만 그의 작품들이 보관된 곳을 찾아냈으며 또 비발디의 음악에 대한 기록등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비발디의 새로운 작품들이 찾아내지고, 또는 복원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1.http://www.antonio-vivaldi.eu
2.위피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