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와 산 안젤로 극장
안토니오 비발디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던 곳은 두곳이었습니다. 바로 사제가 된뒤 음악 선생님으로 머물렀었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와 오페라를 올렸던 산 안젤로 극장이었죠.
비발디의 삶에서 가장 의문이 되는 것중 하나가 그가 "성무"를 하지 못할정도로 허약했음에도 어떻게 음악활동 특히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일을 했는가에 대한 것일수 있습니다.
비발디는 수도원이나 지역교구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평생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 그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수 있게 했을것입니다. 바로 오페라는 "가족 사업"이 된것이었죠. 비발디는 부모와 누이들과 평생 함께 살았으며 가끔 남동생들과도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그의 일을 가족 모두가 돕는 계기가 되었을것입니다.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물론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었을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누이들이나 동생들 역시 비발디의 일을 전적으로 도왔을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도움은 비발디가 오페라를 쓰고 무대에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죠.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당시 베네치아에 있던 고아원이자 음악 교육기관인 수도원이었죠. 베네치아에는 이런 기관들이 여럿있었는데 특히 비발디가 일했던 곳은 여자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고아들이나 가난한 여자아이들을 받았는데 이 아이들이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교육 특히 음악교육을 집중했었습니다. 재미난것은 이곳의 아이들은 축제나 축일등에 연주를 했는데 이 연주가 매우 인기가 있었기에 후에는 재정을 위한 정기 연주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에타에는 유능한 음악가들이 자주 선생님으로 왔으며, 이미 베네치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중 한명이었던 비발디 역시 이곳에 선생님으로 가게 된것이었죠. 비발디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종교음악을 작곡해서 선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연주는 매우 인기있었으며 비발디는 재능있는 제자들을 위해 특별히 곡을 써서 연주하기도 했었죠. 비발디의 몇몇 작품은 이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자들을 위한 곡이었기에 기교가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산 안젤로 극장은 17세기 후반 지어진 베네치아의 중요한 극장들중 하나였습니다. 1677년 개관한 이곳은 비발디가 활동하던 당시 베네치아의 최고 극장들중 하나로 알려져있었습니다. 비발디는 1714년 이 산 안젤로 극장의 무대감독(impresario)의 지위에 올라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일을 합니다. 베네치아의 극장은 당시 다른 유럽의 극장들과 달리 오직 카니발 기간에만 오페라를 상영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늘 허약하다고 주장했었던 비발디가 무대감독 지위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1713년 첫 오페라인 "오토 인 빌라 Otto in Villa"를 무대에 올렸던 비발디는 아마도 무대 감독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면서 오페라에 대해서 좀더 배웠을듯합니다.(...아 갑자기 말아먹은 비발디의 Olando finto pazzo가 떠오르는건 왜일까요-0-;;;)
이 두곳은 비발디의 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며,비발디의 삶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를 보낼수 있었던곳이 아닐까합니다 덕분에 수많은 비발디의 곡들이 남아있기도 한것일듯합니다.
자료출처
1.http://www.antonio-vivaldi.eu/contenu.php?id=1#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